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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14

[오르히카] A good bath for the XX

motschi 2017. 3. 21. 23:02


* '희망의 등불' 약스포 주의




변화는 지극히도 급격하고 갑작스러운 것이었다. 바로 , 겨우 테이블 하나를 사이에 채로 사람이 독으로 쓰러졌는데, 확장된 동공이 의식도 스치지 않고 뇌리에 박히는 찰나에 모험가는 뒤로 손을 묶여서 연회장에 내동댕이쳐졌다. 이를 악물어 고개를 들자 몇 사람 분의 것인지 구분도 안 되는 악의와 울분이 덩어리져 샹들리에를 뒤흔들고, 그는 그것들로부터 쫓기기 시작했다.

황금빛의 연회가 꿈처럼 탈색되고, 상실과 상실이 이어지며 그의 등을 떠밀었다. 단지 지금 발을 대고 있는 곳으로부터 떠나야 하기 때문에 그는 움직였다. 어떤 가치 판단도 내릴 틈을 얻지 못하고, 뒤에 남은 자들이 '살아남으라' 했기 때문에 거기에 따를 뿐이었다. 아니, 차라리 반발할 여유를 갖지 못했다고 봐야 것이다.




'희망'을 위한 아주 좋은 목욕

A good bath for the HOPE




모험가는 어금니가 서로 들러붙기라도 한 듯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꾸욱 힘을 넣어 깨문 참담함은 아까부터 감각이 없어서 오히려 얼얼했다. 초코보 마차는 꽤나 속력을 내고 있는지 투박하게 덜컹거렸다. 나무 바퀴가 거친 땅에서 튀어오르는 소리 속에서 알피노만 간간이 한숨을 내쉬었다. 절망에 짓눌린 등이 전에 없이 둥글게 웅크려졌다. 총명하지만 아직 경험이 부족한 여섯 살에게는 호된 사건일 것이다. 그건 차라리 사고였다. 하지만 무슨 말을 하더라도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다. 사실은 모험가도 자신에게 억지로 이름지어진 '희망'에 반복해서 속을 찔리고 베이는 중이었다. 

다만 모험가는 알피노 곁을 지키고, 자신의 존재감이 그를 지탱하도록 애써야 했다. 어른은 그래야만 했다. 마차에서 비공정으로 갈아타고, 그 신속한 연계에 아낌없이 힘을 내준 사람들에게 감사할 힘을 쥐어짰다. 용머리 전진기지에서 웅크려진 그대로 얼어붙어 버릴 것만 같은 알피노를 다독여 이끌고, 달려나온 오르슈팡에게 멀겋게나마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얼굴을 보자마자 소리내어 울음을 터뜨린 타타루를 안아 주었다 아이들은 모험가에게는 동료 이전에 보호해 사람들이었다. 모두 아슬아슬하게 성인으로서 몫을 하고자 하는 의지만큼은 확실했지만, 명은 전투력이 없고 명은 아직 너무 여리다.


동요에 지친 둘을 재우고 늦은 , 모험가는 겨우 씻을 준비를 하러 나왔다오르슈팡이 내준 기지 욕탕은 수수하지만 기능만큼은 충실하다. 사실은 당장이라도 기절 만큼 지쳐 있었지만 얼고 굳은 몸을 따뜻한 물에  담글 필요가 있었다. 그건 어떤 욕구 이전에 내일도 움직여야 한다는 의무감에 가까웠다.


"벗이여!"


얼기설기 엮은 나무 바닥에서 막 신발을 벗었을 때, 익숙하게 부르는 소리에 돌아보자 오르슈팡이 서 있었다. 꽤나 늦은 시간인데 아직 갑옷도 벗지 않은 채, 양팔로 뭘 잔뜩 안고서. 짐 위로 껑충하게 드러난 얼굴은 밤답지도 겨울답지도 않은 웃음을 짓고 있다. 단 한나절 사이에 많은 것이 변하고 무너져 내렸는데, 이 커르다스의 대장 엘레젠만은 참 한결같다. 긴장해 있던 모험가의 뺨이 살짝 풀어졌다.


"이제 탕에 들어가나? 상처는?"

"응. 아물었어."

"그래, 하지만 아직 내상이 남아 있을 테니까 너무 오래 들어가 있으면 . 나도 같이 갈까? 등을 밀어 주지."

"됐어."

"그런! 그렇지만, 네가 괜찮다면 없지."


언제나처럼 그는 작은 사양에 산뜻하게 물러나면서 자기가 안고 있던 것들을 모험가의 품에 떠맡겼다. 세면도구가 주머니와, 커다랗고 부슬부슬한 배스 타월이다. 곱게 여러 접어서 야생으로 도망친 같은 부피가 푹신푹신하다. 어린아이가 봤다면 멀리서부터 달려와서 안겼을 같다. 


"하지란."


오르슈팡에겐 보통의 짐 같았던 것이 모험가가 안자 시야를 가리는 높이로 품에 가득찼. 이름을 불려서 모험가는 그것을 피해 살짝 고개를 비껴 그를 쳐다보았다. 띄엄띄엄 희미하게 밝혀져 있는 램프 불빛에 익숙한 얼굴의 굴곡이 그림자져 드러났다. 약간 그림자가 진 눈가는 모험가 자신과 꼭 거울처럼 닮았다. 거기엔 아랑곳하지 않고 다만 모험가의 그늘만을 신경쓰면서 상냥하게 웃는 게 그답다면 그답다. 수십 센티미터 위에서 내려다보는 부드러운 시선에 모험가는 몇 번이고 위로받았다.


"어떻게 들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는 네가 살아남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너처럼 중요한 사람을 세상이 해치도록 둘 수는 없잖아."

"......"

"너를 탓할 이유도, 너무 참을 필요도 없어. 활기찬 너는 언제나 아주 좋지만 말이야. 지금도 정말 잘하고 있네."

"......."


모험가는 간신히 음절을 내고 타월에 얼굴을 묻었다. 보기보다 부드러운 감촉에 얼굴이 푸욱 파묻혀 들어갔다. 이대로 그의 눈을 바라보기에는 갑자기 가슴 아래부터가 큰 붕괴음을 내면서 흩어질 것 같다. 마물에게 갈비뼈를 맞았을 때처럼 숨이 꽉 막혀 버린다. 모험가는 조금 견딜 수 없어져서 좀더 힘주어 얼굴을 꾹꾹 눌러 묻었다. 내내 오기처럼 곧게 펴고 있던 등이 작게 웅크려지는 것을, 오르슈팡은 억지로 두들기지 않았다. 아주 좋지 않아도 좋다는 뜻일까.


"잠들 없을 같으면 나한테 오게나."

"그래."


얼굴을 기댄 채로 대꾸하자 뜨거운 숨이 수건에 퍼졌다가 도로 얼굴로 끼쳐 왔다. 그대로 눈물이 조금 수건에 스며드는 느껴졌다.





* * *


몸을 데우고 나오자 한결 개운한 기분이 되었다. 복잡하게 침잠하던 기분은 비누가 녹듯이 조금 풀려나가고 정리되어 있었다. 기계적으로나마 그대로 잠들지 않고 탕에 들른 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어."


조금 가벼워진 걸음으로 코너를 돌자, 흐릿한 램프 아래에 오르슈팡이 서 있었다. 


"너, 여기 있어."

"엿보지 않았네! 그럴 마음이 없는 아니었지만, 네가 불편하면 되지 않나! 하지만 너의 육체, 밤에도 어김없이 윤기가 도는구나...... 좋아!"


아마 모험가를 걱정한 거겠지. 혹시나 안에서 나쁜 생각을 하진 않을까, 중간에 잠들어 버려서 몸이 식지는 않을까 하고. 하지만 평소 같은 말투로 허둥대는 그를 보고 모험가는 그냥 웃어 버렸다. 조금 부은 눈이지만.


"어때, 바로 방으로 오겠나?"

"됐거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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