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긴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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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14

[오르히카] 꿈 조각

motschi 2017. 3. 3. 16:29

* 창천 3.0 이후 스포(?) 주의

* 2.5를 끝내고 대충 오르슈팡 스포를 읽은 상태에서 쓴 것 (설정붕괴 주의)

* 아까 꾼 꿈이라 개연성 없음 주의




    누가 봐도 모험가의 증언이 맞다. 모험가는 다듬어지지 않았을지언정 틀린 말은 하지 않았다. 조금 떨고, 조금 더듬거렸지만 할 말을 하고, 참관한 사람의 대부분은 그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다만 내놓고 동의할 수 없는 입장에 다들 서 있었을 뿐이었다.

이대로라면 아까운 빛의 전사가 누명으로 죽는다. 그를 위해 입을 열기에는 자신뿐 아니라 그에게 달린 사람이며 도시며 땅의 모든 것을 잃을 위험이 큰 탓에 아이메리크조차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그’가 있었더라면.

‘그’라면 좀더 과감한 선택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랑은 어쩌면 좀더 슬기로운 책략을 만들어내, 모험가는 물론 이슈가르드조차 상처 하나 없이 지나갈 수 있을지도 몰랐다.

모험가는 그것을 굳이 표정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하지만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은, ‘그’의 가장 친밀했던 사람으로서 어쩔 수가 없는 일이므로, 끌어올려 봤자 어쩔 수 없는 뜨거운 것을 도로 깨물어 삼킬 뿐이었다.


그때,


퉁,


퉁,


콰앙!


마치 습격처럼 들리는 소리가 터져 돌아보면, 무거운 문이 기세 좋게 밀어젖혀져 반대편의 돌벽에 부딪히는 소리였다. 자연히 수십, 수백 개의 시선이 거기로 몰리게 된다. 그 한가운데서, 모험가는 숨이 막히는 소리를 냈다.


오르슈팡이다.


“그 증거는 여기 있습니다.”


한 점 변함이 없는 목소리와, 다정하고 쾌활한 웃음을 지을 줄 알지만 이런 자리에서는 또 누구보다 진지한 얼굴로 등을 곧게 펴는.


“늦어서 미안하네.”


네 당당한 모습, 아주 좋아. 짧은 순간 스쳐가면서 웃음을 짓기에, 모험가는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다. 좌중에서 그의 이름이 웅성웅성 퍼지는 혼란을 등진 채, 그는 보았다. 오르슈팡의 금속 사슬갑옷과 받쳐 입은 옷, 머리카락, 귀끝 그 어디에서든 있을 수 없는 것이 작게 떨어져 날리고 있는 것이다.


돌가루다. 비석과 같은.



* * *



생각했던 그대로다. 그는 재빠르게 상황을 해결하고, 역시 조금 다급해 보이는 태도로 이제 그만 가야겠다고 말했다. 애매하게 웃으며 아이메리크와 눈짓을 주고받고 모험가를 향해 돌아섰을 때, 모험가는 필사적으로 눈물을 참고 있었다. 수백 명의 방관자 혹은 적을 상대할 때보다도 한 명의, 친구, 를 대하면서 더욱 턱이 떨렸다.


“울지 말게, 맹우여.”


오르슈팡이 넓게 팔을 벌리자, 너무나도 건조하여 알 수밖에 없는 것들이 또 후두둑 떨어졌다. 모험가는 눈을 질끈 감고 그 사슬갑옷의 가슴팍에 뛰어들었는데, 품에 든 것은 갑옷보다도 차라리 돌이었다. 면면이 구십 도의 각을 내어 정중하게 다듬은.


“괜찮을 거야.”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이를 악물고 숨을 참아도 살, 을 맞댄 남자가 알 수밖에 없는 흐느낌이 샜다.


“……나는 이제 가 봐야 하니까, 나머지를 부탁할게.”


어딜 가, 싫어. 모험가는 적어도 그렇게 떼를 쓰는 사람은 아니었으므로, 엉망으로 흐려진 눈앞의 오르슈팡을 올려다보며 꾸역꾸역 고개를 끄덕였다. 표정조차 알 수 없는 남자는 아마, 언제나 그랬듯이, 환하게 웃고 있을 것이다.

그는 언제나와는 반대로 모험가를 살짝 품에서 떼어내고, 코코아를 타 올게. 라고 말하는 것처럼 등을 보이고 성큼성큼 사라졌다.




*



그가 반쯤 부순 문을 반 발짝 뒤로 따라 나가자, 숨을 곳도 없는 보도 위에 눈보라만 한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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