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찢긴 날
아침에 좀 습기가 차는 듯하더니 점심쯤부터 비가 왔다. 우산을 안 챙겨온 것도 문제지만, 날이 습하니까 정말 딱 죽고 싶을 만큼 짜증이 났다. 머리카락은 빗어도 빗어도 여기저기 꾸불꾸불해져서 말려 올라가고, 기분 때문이겠지만 몸도 좀 처지는 느낌이다. 여름방학 중의 보충수업은 정규수업보다도 더 가혹하게 느껴져서 완전히 진이 빠졌다. 교실에 틀어 둔 선풍기 바람 정도로는 습기가 걷히지 않는다. 게다가 수업이 다 끝난 빈 교실은 적막해서 어딘가 더 묵직한 기분. 공기에 어깨를 꾹꾹 짓눌리는 느낌에 나는, 결국 굴복했다. 책상에 반쯤 엎드려서, 앞자리에서 프린트 한 장에 집중한 남자의 뒷모습을 구경했다. 고등학교 3년 내내 지켜봤지만 훌륭하게 어깨가 넓어져서, 이제 제법 멋있어진 실루엣이다. 남방처럼 풀어헤친..
드림물 주의 *** 테이블 건너에서 열심히 프린트를 읽어내려가고 있는 남자를 흘끔 바라본다. 이따금씩 안경을 치켜올리는 모습이 정말 모범생같은 사람이다. 라떼를 가져다 줬는데 점점 식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프린트를 정독한다. 별로 멋은 부리지 않지만, 수수하니 잘생긴 외모다. 둥근 금속 테 안경은 유행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지만 나이들어 보이지도 않는다. 평범한 아이보리색 남방도, 의외로 어깨가 넓고 단단한 듯해서 괜찮아 보인다. 다만, 한 모금 마시더니 거의 손도 안 댄 그의 라떼가 신경쓰였다. "시부야." 눈을 들어 나를 바라본다. 집중하고 있었는지 살짝 미간을 찡그리고 있다. "커피 식으면 맛없잖아." 그제야 그는 프린트를 내려놓고, 라떼 잔을 잡았다. 딱히 커피를 싫어하거나 하는 게 아니다. 대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