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긴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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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아베] 아스피린, 아달린. (上)

motschi 2014. 9. 14. 01:27



하루나 모토키, 대학 2학년, 프로선수.

반월판이 또 나빠졌다.

 

 

아무래도 한 번 다쳤던 곳이라 금방 피로해지는 것 같다.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니고, 구수 제한을 없애고 운동량이 더 늘고 하면서 약간 부하가 걸린 듯하다. 병원에 착실히 다니면서 회복하면 되는 거였지만, 하루나의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신경쓰이는 것이 있었던 것이다.

 

ㅡ타카야.

 

대학에 와서는 야구를 하는 것도 아니면서 뭐가 그렇게 바쁜지. 얼굴 보기가 갈수록 힘들어진다. 자신도 프로야구 선수 스케줄로 치면 한가하게 아베를 기다리고 있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기껏 짬을 내서 만나게 되면 아베는 더 바쁜 모습으로 잠깐 얼굴만 비추고 사라지곤 했다. 미안합니다, 수업이 있어서. 과제 때문에 모임에 가야 해서. 타카야 너 임마, 부르니까 오는 것뿐이지. 하루나는 어금니를 으득 물었다. 보호대로 감싼 무릎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게 짜증스러웠다.

 

ㅡ휴가야. 반월판 손상. 집으로 와.

 

자취방에 아베를 부르는 것도 오랜만이라고 생각했다. 

 

 

 

-

 

 

 

의외로 아베는 금방 달려왔다. 눈썹을 치켜올리고 당황한 얼굴로 하루나의 무릎을 바라보았다. 중학교 때보다는 훨씬 키도 크고 어깨도 넓어졌지만, 이럴 때 경악한 얼굴 그대로 입을 벌리고 있는 게 딱 토다키타 시절 그대로다. 그런 아베의 얼굴을 여유롭게 감상하려는데, 얄밉게도 금세 심드렁한 얼굴로 돌아가 버린다.

 

"이제 프로면서, 자기관리도 제대로 못하다니."

"뭐? 내가 일부러 이렇게 된 것도 아니고."

"무릎 말고는 멀쩡한 것 같네요."

 

언제랑 다르게. 약올리듯 덧붙이는 말에 하루나는 다치지 않은 다리로 아베를 차 주고 싶었지만 그만두었다. 아베가 슬쩍 고개를 돌려 아무것도 없는 천장을 올려다봤기 때문이었다. 몰래 작게 들이쉬는 호흡.

 

"...야, 타카야. 너 우냐?"

 

머리카락을 넘기는 체하며 머리를 살짝 흔든다. 아직도 짧게 이리저리 뻗치는 머리면서. 자신의 의도대로 되지 않았는지, 숨기려던 눈물이 한 방울, 뚝 떨어졌다. 소파에 기대 누운 하루나는 그런 아베의 옆턱까지밖에 볼 수 없었다. 의외로 어린 느낌이 보이는 각도...라고 멍하니 생각하고 있는데, 겨우 아베가 하루나 쪽으로 돌아섰다. 한 손으로 눈가를 누르고.

 

"모토키...선배. 왜, 하필, 반월판..." 

 

목 안에서 뭔가를 억누른 듯한 목소리로 거기까지 말하다, 결국 말을 끝맺지 못하고 아베는 욕실 쪽으로 가버렸다. 갑자기 혼자 남겨진 하루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너 이 자식, 이럴 때만 모토키라고 부르지. 다쳤을 때의 기분을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을 때도 아마, 오랜만에 하루나가 아닌 모토키에게였던 것 같다. 그 때도 조금 울려고 했었던가. 하루나는 한숨을 쉬며, 팔에 힘을 실어 몸을 일으켰다.

 

"타카야, 그런 데서 울지 말고 이리 와."

 

한쪽 다리로 비틀대며 일어서는 소리가 들려, 아베가 얼른 돌아왔다. 눈물을 옷소매로 비벼 닦았는지, 눈가가 불그레했다. 호흡을 꾹꾹 누르면서도 하루나가 다시 눕는 걸 도와준다. 하루나는 실소하며 손을 까딱까딱 흔들었다.

 

"바닥이지만 앉아. 내가 이런 상태니까."

 

아베가 엉거주춤 소파에 가까이 다가가 바닥에 엉덩이를 붙이자마자, 하루나는 한 손을 뻗어 아베의 머리를 붙잡았다. 까만 뒤통수가 손 안에서 움찔했지만 그대로 끌어당겼다. 입술을 가져다 대자 익숙한 듯이 아베의 입술도 열렸다. 울어서 열이 오른 것인지, 입술도 입 안도 뜨거웠다. 몇 번이고 읽은 책을 다시 읽듯이, 익숙한 치열을 거칠게 훑었다. 보일 듯이 선명한 얕은 요철. 아베도 그에 마주 움직여오지만, 하루나만큼은 힘이 없었다. 어딘가 나른하고 무기력한 아베를 느끼며, 하루나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타카야는 언젠가부터 항상 이랬지. 그게 언제나 화가 났다. 

 

"...하"

 

아베가 머리를 뒤로 뺐다. 한숨을 쉬듯 호흡을 내뿜었다. 울음은 어느새 완전히 진정되어 있었다. 아베는 망설임없이 몸을 일으켰다.

 

"...갑니다."

"타카야."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멀쩡한 무표정으로 돌아본다. 하지만 하루나는 익숙한 듯이 다시 손을 까딱했다.

 

"너 머리 아프지? 약 먹고 쉬었다 가."

"..."

"혈관이 막 뛰더라, 울어서 그런가."

 

아무리 어른인 체 다른 사람인 체해도 아베는 아직도 뻔했다.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도 알아서 구급상자에서 약을 꺼내고 알아서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와, 입에 털어넣는다. 그리고 건조하게, 침대 좀 빌릴게요. 하고 하루나의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

 

 

 

약기운에 잠든 아베는 몇 시간이고 깨어나지 않았다. 기다리다 지친 하루나가 절뚝거리며 방에 들어가도, 옆에 누워도, 약간 부은 눈가가 천진하게 풀어진 채로 잠들어만 있었다. 자정이 다 되어서야 조금 걱정이 되기 시작해서, 하루나는 아베를 흔들어 깨웠다. 나른한 눈을 간신히 뜬 아베에게, 오늘은 안 바쁘냐? 하고 묻자, 알아들은 건지 아닌지 응....하고 앓듯이 대답하고 다시 눈을 감는다. 아예 여기서 잘 생각인가. 외출복 그대로 누워 있기에, 하루나는 아베의 바지 벨트를 풀어주었다. 지금은 야구를 하지 않아서인지 배와 허리가, 중학교 시절 어린애처럼 말랑한 느낌으로 돌아와 있었다. 손가락으로 아베의 허리를 만지작거리자,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도 꼬물꼬물 하루나의 품을 찾아 파고든다. 눈을 뜨면 다시 어른 행세를 할 거면서. 하루나는, 몇 시간 전에 먹은 소염제가, 이제 와서 쓰게 느껴졌다.

 

 

 

 

-

 

 

 

아침, 하루나는 아베보다 먼저 잠이 깼다. 물을 마시려고 냉장고에 다가가자, 테이블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는 약상자와 알약 포장지가 눈에 들어왔다. 어제 아베가 마시고 내려놓은 그대로인 물컵도. 그는 투덜거리며 쓰레기를 치우려고 손을 뻗다가, 생각했다.

 

이 약은 뭐지?

 

눈에 익은 약이 아니다. 알약 두 개를 꺼내 먹은 흔적이 있지만, 이런 약이 있었나 싶게 낯선 포장지였다. 의아함에 빈 상자를 집어들자, 수면유도제. 구급상자가 마구 헤집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아베가 잘못 보고 꺼냈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진통제 케이스와 색이 똑같다.

 

"...이걸 두 개나 먹었다고...?"

 

문득 시계를 올려다보고, 아베가 자러 들어간 지 열두 시간도 더 지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잠시 손 안의 수면유도제를 바라보았다. 어제의 아베를 떠올렸다. 그만큼 커버린 주제에 중학교 꼬맹이 같던 어젯밤. 모토키 선배. 울음을 누르던 아베의 목소리. 새삼, 지금 두 다리를 완전하게 디딜 수 없다는 것을 자각했다. 오늘은 바빠서, 안되겠네요. 자꾸 어른인 체하는 목소리. 건방지게.

 

 

하루나는 빈 상자를 꾸깃꾸깃 접어서 버리고, 남은 수면유도제는 진통제 상자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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