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긴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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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미하] 딸기말고 딸기맛

motschi 2014. 9. 14. 01:25

미하시가 아침 연습에 오지 않았다.

미하시의 엄마에게서 감독이 연락을 받아, 미하시가 밤새 아파 병원에 들렀다 온다는 것을 전했다. 아파? 어디가 얼마나 아프길래? 의문과 걱정으로 술렁이는 야구부원들 사이에서, 누구보다도 당황한 것은 아베였다. 감기인가? 어디 아픈 기색은 없었는데. 자신이 놓친 부분이 있는지 열심히 생각했지만, 연습을 빠져가면서 급하게 병원에 가야 할 정도로 아픈 곳이 있었는지는 아베로서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ㅡ미하시, 무슨 일이야? 어디가 아파?

아침연습이 끝나자마자 문자를 보냈지만 답장이 없다. 혹시나 해서 타지마나 하나이에게도 확인해 보았지만 마찬가지로 아무 소식도 없었다. 아베는 재킷 주머니에 손을 넣어, 아침에 넣어온 작은 틴케이스를 만지작거렸다. 슌이 전날부터 화이트데이를 준비한다며 소란을 피우기에, 한 대 쥐어박고 빼앗아 온 것이다. 기껏 주려고 가져와 봤더니, 학교에 안 온 건 물론이고 연락도 안 받는다. 주머니에 넣은 손이 살짝 움직이자 틴케이스 안의 내용물이 달각달각 소리를 냈다. 어디 있어, 미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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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교시가 끝나고 한 번, 2교시가 끝나고 한 번, 그리고 3교시가 끝나고 다시 한 번 9반에 들르자 이즈미가 짜증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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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미하시 왔어^ㅇ^)/

4교시 중간쯤에 핸드폰 진동이 울려서 급히 확인했더니, 기다리던 미하시의 답장은 아니었다. 그것도 타지마나 이즈미도 아닌 미즈타니여서, 아베는 약간 미간을 찡그리며 미즈타니를 돌아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미즈타니는 소리없이 손가락으로 복도를 가리켰다. 그 방향을 따라 시선을 돌리자, 흰 셔츠를 입은 뒷모습이 아슬아슬하게 창문 끝으로 보였다. 그 모습은 금세 7반 복도를 지나가 버렸지만, 저것은 아베가 잘못 봤을 리 없는 미하시였다.

걸어왔으니까 쓰러질 정도로 아픈 건 아니겠지. 일단 수업이 끝나면 찾아가서, 어디가 아픈지 물어보고... 근데 왜 답장 안 했지? 걱정할 거라고 생각 안 하나? 내가 물어보면 또 겁먹고 아무 말도 안 해주려나? 나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이럴 땐 정말 열받는다고! 그러고보니 걷는 게 좀 힘이 없지 않았나? 열이 났나 정말? 3월이지만 아직 쌀쌀하니까 옷 잘 챙겨입고 다니라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 미하시는 정말...


복도를 한번 넘겨다보더니 갑자기 끝도 없이 계속되는 아베의 생각을 읽은 것 같아, 하나이는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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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시!"

4교시가 끝나자마자 9반 교실에 무서운 속도로 날아 들어온 아베는, 교실문을 밀어젖히며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하나이는 한 발 늦게 쫓아와 아베의 어깨를 잡았다. 야, 싸우러 온 거 아니잖아.

"미하시라면 이 상태야~"

타지마가 서 있는 앞에, 미하시는 자기 책상에 엎드려 있었다. 자고 있지는 않고, 지친 듯한 얼굴로 엎어져 있을 뿐이었다. 타지마가 쭈그려 앉아 미하시의 얼굴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보았다.

"수업중에 비틀비틀 들어와서 계속 이러고 있어."
"열은... 없네."

하나이가 미하시의 이마를 손바닥으로 감싸 열을 재는 사이, 아베는 주머니에 든 틴케이스가 조금씩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미하시, 점심 먹자~"

타지마가 달래듯이 말해도 미하시는 엎드린 채 고개를 살짝 저을 뿐이었다. 우웅, 안,먹...어. 아주 작게 옹알거려서, 멍하니 있었다면 그냥 흘려보냈을 정도의 목소리였다. 하나이가 난처한 얼굴로 돌아봐서, 아베는 한 발 가까이 다가가 미하시의 등에 손을 올렸다.

"일어나."

반응을 기다리지 않고, 손목을 잡아 일으켰다. 미하시는 가볍게 끌려왔다. 타지마가 등 뒤에서 호ㅡ!하고 외치는 것을 내버려 둔 채, 아베는 그대로 미하시를 데리고 교실 밖으로, 건물 밖으로, 아무도 없는 곳을 찾아 걸었다. 손이 닿은 것은 손목뿐인데, 미하시가 안절부절못하는 게 금세 느껴졌다.



-



풀장 아래의 부실 건물 뒷편의 좁은 틈까지 온 뒤에야, 겨우 둘이 남게 되어 마주섰다. 미하시는 언제나처럼 약간 시선을 비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런 미하시의 색이 옅은 머리를 바라보며, 아베는 습관처럼 주머니에 든 것을 손가락으로 더듬었다. 달그락달그락.

"넌 진짜, 하..."

무엇부터 말해야 할지 몰라 말문이 막혀 버린 아베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차가웠을 터인 틴케이스는 이제 손의 온도 때문에 미지근하다. 아베는 우선 이걸 주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달래면서 하나씩 물어보자.

"...이거, 줄게."

틴케이스를 꺼내 건네자, 미하시는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두 손바닥으로 감싸질 만큼 작은 그것을 받아 들고, 의아한 듯이 아베를 올려다보았다.

"어, 오늘, 그... 날이라고 하니까."

이런거 원래 관심없는데. 아베가 중얼중얼 사족을 붙이는 것을 흘려들으며 미하시는 틴케이스의 뚜껑을 살짝 비틀어 돌렸다. 뚜껑을 열자, 하얀 슈가파우더가 뿌려진 딸기사탕.

"아..."

갑자기 달달하게 올라오는 딸기향에, 미하시가 짧게 소리를 냈다. 이제 뭐라도 말해줄 기분이 됐겠지. 아베는 기대하듯 미하시를 바라보고, 사탕 케이스를 들여다보던 미하시가 급격히 안색이 어두워지면서 눈물을 방울방울 떨어뜨리는 것을 보고 당황해서 그의 어깨를 잡아챘다.

"야, 왜 그래?"
"우,우윽...아,베군..."

아베의 손아귀 안에서 미하시는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다. 그러자 울음이 스위치가 된 것처럼 띄엄띄엄 한 마디씩 흘러나왔다. 어제, 밤부터, 아파서, 병원, 무서워서...



-


타지마의 도움 없이 미하시의 끊어진 단어들을 모으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미하시가 뭐라고 하고 싶은지는 알 수 있었다.

아무래도 미하시는 어젯밤부터 이가 많이 아팠던 것 같다. 그 전부터도 이따금씩 찌릿하는 느낌은 있었지만 (여기서 아베는 소리쳤다. 그 때 병원을 갔었어야지!!) 어젯밤에 갑자기 엄청나게 아프기 시작했다고 한다. 밤새 잠도 못 자고 앓다가 아침이 되자마자 치과에 가느라 아침연습도 참여할 수 없었다. (여기서부터는 미하시가 오열하기 시작해서 알아듣기 힘들었지만) 자기는 너무너무 무서웠는데 주사도 몇 번이나 맞고 치료도 굉장히 아팠다는 것 같다. 그러고 바로 학교에 왔으니 기운이 없겠지. 하지만 아베,군,이, 화낼,까,봐. 말 안 하고 잘 지나가 보려고 했는데 이렇게 사탕을 줘버리니까. 

"사,탕, 좋아...하는,데..."
"안돼. 아직 치료 안끝났잖아?"

아베는 손을 들어 눈물로 젖은 미하시의 뺨을 만졌다. 눈물을 닦아 주려는데, 과연 한쪽 뺨이 부은 것 같기도 했다. 울면서도 손에 든 채의 사탕 케이스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게 신경쓰였다. 아플 텐데. 아베는 그런 미하시 대신 얼른 사탕 하나를 집어 자신의 입에 넣었다. 미하시의 시선이 따라왔다. 금방 달달한 딸기맛이 입 안에 퍼졌다.

아베는 집중해서 사탕을 입 안에서 이리저리 굴려 녹였다. 사탕의 거칠거칠한 표면이 점점 둥글려지며 작아졌다. 입 안에 단맛이 가득했다. 진짜 딸기로는 느낄 수 없을 것 같은 딸기맛. 사탕이 다 녹아 없어진 것을 확인하고, 아베는 급히 미하시의 양볼을 잡고 끌어당겨, 입술에 입술을 가져갔다. 이 단맛이 없어지기 전에, 전해 주고 싶었다.

"흣..."

숨을 삼키는 듯한 짧은 음성. 미하시는 조금 주저하다가, 아베의 딸기사탕을 맛보기 시작했다. 미하시에게서는 낯선 약 맛이 났다. 입이 마를 정도로 진했던 단맛이 조금씩 핥아져 나가는 기분이었다. 아베는 약간 부어 있는 부분을 혀로 더듬어, 환부를 찾아냈다. 싸한 치과 특유의 맛이 강해져서 슬쩍 미간을 찌푸렸다. 오늘부터 양치질도 잘 지켜봐야겠어.

입술을 뗐을 때는 사탕의 단맛이 거의 사라져서 아쉬울 정도였다. 대신 미하시가 울음을 그치고, 기분이 조금 나아진 듯한 얼굴을 하고 있다.

"마,맛있,어!"

얼굴이 눈물로 엉망이면서도 눈을 반짝반짝 빛낸다. 미하시는 주먹을 모아쥐고 아베에게 한 발짝 다가섰다.

"하나,더....!"
"...이제 안 돼."
"하,하나,더..."
"식욕이 있으면 밥을 먹어. 이제 단 건 안돼! 그리고 이 닦을 땐 나랑 같이 가."

이 닦는 방법부터 가르쳐줘야겠어. 너는 진짜....!! 아베가 참았던 잔소리를 쏟아내기 시작하자 미하시는 오히려 안심한 듯이 뺨에 들어간 힘을 풀었다. 틴케이스의 뚜껑을 닫고, 소중하게 양손으로 감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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틴케이스에 든 딸기사탕은 전부 1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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