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긴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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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미하] 후리 계절합작용 (여름)

motschi 2014. 9. 14. 01:20


여름은 지독하게 뜨거웠다. 풍경은 내리쬐는 볕에 새하얗게 타들어가는 듯 보였다. 아주 작은 먼지들이 여기저기 떠다니다, 햇빛을 받아 희미하게 빛나곤 했다. 건조했다. 바싹 마른 볕의 냄새가 났다. 
매미 소리를 계속 듣고 있으면 어느 순간부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우주에 떨어진다면 이런 느낌일까. 너무 조용해서 귀가 먹먹했다.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미하시에게는 그런 외로움이 처음은 아니었다. 그게 무엇이라고 깨닫거나 이름을 붙이기도 전에, 그는 이런 진공상태를 몇 번이나 겪어 왔다. 눈으로 분명히 보고 있는 익숙한 주변 풍경이 자꾸만 희게 탈색되어 갔다. 그러면 자신은 반투명한 그림자처럼 희미해져서, 아마 이대로 사라져버리는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되는 것이었다. 그것은 특히 중학교 시절에 몇 번이나 떠오른 이미지였다. 10인치 높게 쌓아올린 그 자리가 아니면, 미하시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리고, 그 자신에게도, 아무도 없었다.

고등학교에 와서는 다행히 그 빈도가 줄었다. 미하시 혼자 남는 시간이 거의 없었고, 하루하루 놀라운 일들을 니시우라의 친, 구, 들은 당연한 거라고 말해주었다. 울어도, 답답하게 굴어도, 실수를 해도, 공을 얻어맞아도. 게다가, 매일매일 자신에게 세심하게 신경써주는 사람도 있다. 목소리가 크고 화를 잘 내서 좀 무섭긴 하지만, 처음 만나고 반년이나 지난 지금으로서는 이제 그의 부재를 상상할 수도 없게 됐다.


――――――부재. 끔찍한 단어는 떠올린 것만으로도 식은땀이 나게 했다.
미하시는 버릇처럼 입술을 깨물었다.







-



그는 입술을 꾹, 힘주어 다물고 있는 때가 많았다. 하지만 완고한 표정이라기보단, 양 입꼬리가 약간 올라가 있어 어쩌면 어렵게 웃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아니면 울먹거리고 있는 걸지도 몰랐다. 확실한 것은 언제나처럼 안절부절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미하시?"

무릎 진찰이 끝나고 막 자전거에 올라타려던 아베는 미하시를 돌아보았다. 오늘은 의사로부터 아직 운동 강도를 올리지 말라는 말을 들어서인지, 미하시의 눈빛이 평소보다 더 불안했던 것이다. 아베 자신도 약간 침울해지려고 했지만, 입술을 꾹 눌러 문 미하시를 챙기는 것이 먼저였다. 왜 그래, 하고 묻자 미하시는 말없이 고개를 젓지만, 아베는 금방 알 수 있었다. 3년 간 다치지도 아프지도 않겠다는 약속이 깨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오늘은 아직 안 된다는 말이나 듣고 나왔으니. 아베군이 안 나으면 어떡하지, 아베군이 없으면 어떡하지, 그런 생각들이 귀로 듣는 것처럼 전해졌다. 이 바보가, 지금 답답한 게 누군데.

"...피 난다. 입술 좀 가만히 둬."

미하시의 앙다문 입술 새로 엷게 핏빛이 비쳤다. 아베가 그것을 지적하자 미하시는 그제야 깨달은 듯 흠칫 놀라며 긴장하고 있던 입가에서 힘을 뺐다. 입술이 건조하지는 않지만 물고 있었던 탓에 창백하게 질려 있다. 이런 여름날에, 창백이라니. 입술색이 빠져서 불그스름한 핏자국이 더 대조적으로 느껴졌다. 아베는 머리가 아찔했다. 날이 너무 더워서일 거라고 생각했다.





-



초목은 푸르렀는데 날은 사막같았다. 등 뒤에서 하아, 하아, 하고 미하시가 거친 숨을 내쉬었다. 아베는 다치지 않은 쪽의 발을 딛어 자전거를 멈췄다. 잠시 미하시의 힘에 밀려 발이 끼익하고 끌렸다. 돌아보자, 미하시는 자전거 뒤쪽을 붙잡고 몸을 구부린 채로 그대로 멈춰 있다.

"미하시, 얼굴 들어 봐."

아베가 천천히 자전거에서 내리며 말하자, 미하시는 땀 범벅으로 정신없는 얼굴이면서도 고개를 들었다. 금세 아베의 손이 뻗어져 미하시의 턱을 움켜쥐었다.

아아, 이건 진짜로.

예상대로였다. 자전거를 밀고 언덕을 올라오는 그 사이에 미하시의 입술은 또 출혈을 시작했다. 그제야 아베의 의도를 깨달은 미하시가, 성적표를 숨기듯이 입술을 다물어 감췄다. 혼날까봐 두려워하는 아이의 얼굴에, 아베는 쓴웃음을 지었다. 검지손가락을 들어 미하시의 아랫입술을 살짝 내리자, 이로 뜯어 너덜너덜한 안쪽 입술. 덜 아문 상처와 지금 새로 난 상처가 겹쳐서 핏빛이 돌고 있다. 입술 안으로 조금 드러난 아랫니에도 피가 살짝 묻어 있다. 아아, 장미색. 눈으로 보기에도 자신의 입술까지 아파질 것 같은 상처를 보고, 아베는 멍하니 꽃의 단맛을 떠올렸다.

"...미, 미안, 합니다."

미하시가 허둥지둥 얼굴을 뒤로 빼며 사과한다. 지적받은 걸 고치지 않아서 혼날 거라고 생각한 것 같다. 아베는 손가락으로 누르고 있던 미하시의 입술을 놓쳐, 이번에는 직접 입술을 가져갔다. 오른손으로 쥔 채인 미하시의 턱이 손 안에서 움찔하고 떨렸다. 

"흡..."

닿은 입술로부터 미하시의 숨소리가 짧게 새어나왔다. 계속해서 입술을 괴롭힌 탓인지, 미하시의 입술은 열을 머금어 뜨거웠다. 사정없이 몸으로 내리쬐는 볕보다도 더. 아베는 혀로 살짝 미하시의 입술을 건드려, 그의 안으로 침입했다. 몸은 서툰데 마음이 먼저 움직여서, 혀가 급히 가까운 곳부터 닿기 시작했다. 앞니 뒤쪽에 볼록하게 나온 부분을 간지럽히자 미하시가 다시 어깨를 움찔했다. 아베의 혀는 계속해서, 빠른 페이스로 움직였다.

"...읏!"

아랫입술의 안쪽을 건드리자, 미하시가 아픈 듯이 신음을 터뜨렸다. 아베도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장미꽃잎 같던 입술에서는 피 맛이 났다. 연한 살이 뜯겨져 조금씩 거친 촉감이 있었다. 아베는 다친 늑대가 그러하듯 그 상처들을 하나하나 핥았다. 머금은 핏방울을 상처째로 지워버릴 듯이. 그러는 동안 미하시는 마주 혀를 움직여 오지도, 아베를 밀쳐내지도 않았다. 다만 천천히, 하지만 약간 떨리는 손을 아베의 등에 살며시 올릴 뿐이었다. 자전거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넘어졌다. 

팟, 하고 정신이 들었다. 자전거의 금속이 땅에 부딪히는 소리.

아베는 그제야 혀의 움직임을 멈추고 천천히 입술을 뗐다. 이제 와서,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지 하고 조금 후회했다. 그는 얼른 시선을 돌려 쓰러진 자전거를 바라보았다. 햇빛이 자전거에 반사되어 눈을 괴롭혔다. 아직 자신의 등에 닿아 있는 미하시의 손바닥을 느끼고, 아베는 생각했다. 이건 뭐지.

"아, 아베, 군..."

보지 않아도 미하시가 떨고 있다는 건 느낄 수 있었다. 매미 소리에 묻혀버릴 듯한 작은 목소리로 미하시는 말했다. 사라지지마, 아베군.
아베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깨달았다. 방황하던 시선을 바로잡아 미하시를 똑바로 바라보며, 목소리가 확고하게 들리도록 좀더 신경썼다.

"...안 사라져. 나 여기 있잖아."

등에 슬며시 올라가만 있던 미하시의 손이 셔츠를 꽉 움켜쥐는 것을 느꼈다. 입술뿐 아니라 그 손도 뜨겁게 느껴지는 건, 아마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열 때문이겠지.




-



그 뒤로도 미하시가 입술을 물어뜯어서 상처를 내면, 둘이서 로드를 다녀오는 길에 아베가 소독을 해주었다. 물론 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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