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긴 날

[미하베] 열 본문

FURI

[미하베] 열

motschi 2014. 9. 14. 00:44


여름이 다 지나가고, 한두 명씩 등하교길에 재킷을 챙겨오기 시작했다. 해가 조금씩 짧아지기 시작해, 아침 연습에 갈 때나 저녁 연습에서 돌아올 때 조금씩 하늘이 어두워져 갔다. 

그날도 저녁 연습을 마치고, 아베는 언제나처럼 미하시에게 이런저런 잔소리를 했다. 편의점에서 구운 달걀도 하나 챙겨 주고, 비타민도 하나 사서 안겨줬다. 아베는, 나, 괜찮..아!! 라고 말하는 미하시에게 미간을 찌푸려 보였다. 바람이 슬슬 쌀쌀해지잖아. 감기 걸리지 마. 그리고 아베 자신도 핫도그 하나를 사 크게 베어물었다. 


그리고 새벽이 채 지나가기도 전에 다 토했다.


위를 손으로 쥐어짜는 것처럼 압박이 왔다. 밤새 토해서 뱃속이 텅 비었는데도 자꾸 속이 부대꼈다. 아베는 등을 둥글게 말아 배를 껴안고 웅크렸다. 몸을 웅크리자 자신의 체온이 후끈하게 느껴져 와서, 그제야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위가 아파. 뭘 잘못 먹었나? 쿨럭쿨럭 기침이 나오는데 숨이 뜨거웠다. 아베는 자기도 모르게 으으...하고 신음을 흘렸다.

"타카, 일어날 수 있겠어? 약 먹자."

어머니는 벌써 간병 준비를 마친 상태다. 찬물이 담긴 대야, 수건, 약과 물을 올려둔 쟁반. 아베가 눈만 겨우 슬쩍 들자 어머니는 팔을 뻗어 그의 등을 받쳐주었다. 아베는 열이 올라 정신 없으면서도 왠지 어리광을 부리고 싶은 기분이 들어, 어깨를 기댄 채로 먹여주는 그대로 약을 받아먹었다. 그리고 다시 눕혀주는 대로 눕자, 이번에는 찬물에 적신 수건이 얼굴을 대충 훑고 이마에 올려졌다.

"학교에는 엄마가 연락할게. 오늘 푹 쉬는게 좋겠어ㅡ"

목소리가 점점 아득해졌다. 그러고보니 지금 몇 시지, 아침 연습은 어쩌지........ 
미하시의 얼굴이 잠깐 떠올랐다 사라졌다. 





새벽부터 앓아서인지 하루는 길었다. 죽은 듯이 자고 일어났는데도 아직 밖은 밝았다. 어머니가 몇 번 왔다갔다 하고 창 밖에서 가끔 이런저런 소리가 들려올 뿐, 그 외에는 자신의 불안정한 숨소리뿐이었다. 약을 먹어서인지 위의 아픔은 좀 가라앉은 것 같았다. 하지만 열이 아직 떨어지지 않아서, 여러 가지를 생각할 여유가 생기지 않았다. 이마에 올려둔 수건이 미지근하게 말라 있었다. 수건의 온도를 의식하자마자 몸에 남은 열이 더 뜨겁게 느껴졌다. 쿨럭, 하고 기침을 하자 누가 들어도 제대로 감기에 걸린 듯한 묵직한 기침소리가 딸려나왔다.

망했다. 그렇게 생각했다. 아베는 이불을 머리 위까지 끌어당겼다. 미하시. 열에 들뜬 머리가 인지하기도 전에 무심코 입술이 세 음절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미하시, 걱정하겠지. 캐치볼은 아마 타지마나 이즈미랑 하겠지만, 집중 못 할 거야. 울먹울먹하는 미하시의 얼굴이 잠시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여름에 내가 무릎을 다쳤을 때도... 지끈 하고 머리가 아파왔다. 3년 동안, 절대 다치지 않을게. 아프지도 않을게. 라고 단언한 것은 아베였는데, 다치고 아픈 쪽도 아베 자신이었다. 

미하시. 약속했는데.

쿡, 눈물이 새어나왔다. 아베는 열이 참 안 내린다고 생각했다. 눈물 때문인지 눈가와 이마가 더욱 뜨거워졌다. 크게 숨을 쉬면 가슴 속 어딘가가 그렁그렁하고 걸리는 소리가 나서 짜증이 났다. 자꾸 미하시의 울 것 같은 얼굴이 생각났다. 웃는 얼굴은 어땠더라.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 머리가 아파. 한 번 터져나온 눈물은 끝을 모르고 계속 흘렀다. 또 한 번 크게 숨을 뱉자 흐느낌이 섞여나왔다.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는데 머릿속은 이상하게 복잡했다. 아베는 그렇게 한참을 소리내어 울었다.





얼마나 울었을까, 머리끝까지 덮어쓴 이불을 누군가 살며시 걷어냈다. 서늘한 손이 아베의 이마를 잠시 만지다, 엉망으로 울어 뜨거워진 눈을 감싸 덮었다. 눈의 뜨거움이 조금 덜어지는 기분이었다. 엄마? 아니, 엄마 손이 아닌데. 약간 거칠게 굳은살이 있는 손바닥, 아베는 이 손을 잘 알고 있었다.

"미ㅡ"
"이, 일어나지 마! 아베,군"

튕기듯이 일어나려던 아베는 자신의 눈을 덮은 손 하나에 가로막혀 다시 쓰러졌다. 그제야 상대는 손을 거둬주었다. 미하시, 역시 미하시다. 여기 어떻게 왔지? 지금 몇 시지? 연습은? 아베가 무엇부터 물어봐야 할지 몰라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고 있자, 미하시는 손을 다시 뻗어 왔다. 미하시가 차가운 손으로 얼굴에 남은 눈물을 닦아주자, 아베는 그제야 자신이 계속 울고 있었고 그것을 미하시에게 들켰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필 미하시에게. 열인지 창피함인지 모르게 얼굴이 다시 후끈 달아올랐다. 덜 멈춘 눈물이 찔끔 새어나왔다.

"괜찮,아..."

의외의 말에 올려다본 미하시는, 울 것 같은 얼굴이 아니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형같은 얼굴로, 안심시키듯이 희미하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괜찮아, 타카야."

더듬지도 않고 이름까지 붙여서 다시 말한다. 아베는 아무 말이라도 좋으니 뭐라고 반박하고 싶었지만, 얼굴을 닦아주던 미하시의 손이 다시 이마와 눈을 덮어 오자 그만두었다. 서늘한 손에 두통이 조금씩 진정되는 것 같았다. 미하시의 단단하면서도 말랑한 손가락이 자신의 눈썹을 쓸었다. 아베는 자신도 모르게 미간에 들어가 있던 힘을 풀었다.





"미하시, 그렇게 혼자 달려가버리면 어떡해?"
"같이 요거트 사 가자고 했잖아."

뒤늦게 아베의 집에 도착한 타지마와 사카에구치가 방에 들어섰다. 미하시는 흠칫 놀라며 뒤돌아보곤, 다시 '미하시'로 돌아와 사과했다.

"미,미안,해... 사카에구치,군, 타지,마..군."

사카에구치가 든 편의점 봉투가 바스락바스락 소리를 냈다. 미하시는 다시 흠칫하며 쉿 하고 입술에 손가락을 댔다. 하지만 아베는 반응하지 않았다.

"아베, 자?"
"응, 지,금...막."

미하시는 그때까지도 아베의 이마를 덮고 있던 손을 뗐다. 아베는 고른 숨소리를 내며 평온하게 잠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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