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긴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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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운동회 [E-10] 샘플

motschi 2016. 12. 1. 02:07

안녕하세요, 밀카입니다.

1월 8일 대운동회에 *비가 오면 우울해지는 카사마츠*를 가져가게 되었습니다!

120~130p 예정이고 아래 링크에서 선입금 현장수령+통판 예약 받고 있습니다. (~1/2)


http://naver.me/5TUETosF




표지는 이씽(@2Ssing)님 커미션입니다!



그간 웹에 올렸던 분량이 포함되어 있으며, 대부분의 경우 대폭 수정을 거쳤습니다.

웹 연재분은 행사 전에 삭제될 예정입니다.

아래는 샘플입니다.






4월 O일 비


새벽부터 비가 오고 있었는지 아침이 되었는데도 하늘이 밝아지지 않는다. 날은 경계도 없이 어둑어둑하고,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도 잦는 기색이 없다. 키세는 그냥 블라인드를 내려 버렸다. 창 밖으로는 우산을 쓴 사람들이 지나다녔지만, 이 집 안은 그냥 아침이 아직 오지 않은 것처럼.

카사마츠는 이불 속에서 몸을 둥글게 만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눈은 반쯤 뜨고 있지만 일어날 생각은 없다. 그는 비가 오는 날이면 특히 기운이 없어져서, 몇 시간이고 그렇게 이불 속에만 있으려고 했다. 키세가 다가와 이마에 손을 얹으면 어김없이 미열이 있었다.

달에도 그림자 진 뒷면 정도는 있는 법이다. 카사마츠가 마음의 어딘가에서 누덕누덕 얕아진 부분을 방 안에서 혼자 웅크린 채로 해결한다는 것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뒤늦게 키세만이 알아챈 사실이었다.


"선배, 오늘은 수업 안 갈 거죠?"


키세는 밤 사이 둘이서 덮고 있던 이불을 헤쳐서 카사마츠를 찾아냈다. 그의 평소 성격만큼 억세고 짙은 눈썹을 손가락으로 슬슬 쓰다듬어도, 카사마츠는 그 감촉에 아주 잠깐 꿈틀할 뿐 화내지도 않는다. 키세의 손끝이 눈썹을 타고 움직여서 이마와 관자놀이 위를 톡톡 건드린다. 그건 반쯤은 장난이지만, 약간은 열 때문에라도 긴장하고 있는 미간이며 눈가를 풀게 하는 신호이기도 했다. 손가락 끝으로 열을 훑어내듯이 토독토독 얕은 소리를 내면 카사마츠는 아주 조금 힘을 빼면서 도로 눈을 감는다.

키세는 익숙하게 서랍에서 약을 꺼내고, 주방에서 미지근한 물을 따라 와서 카사마츠를 일으켰다. 아직 미열이지만 점심 쯤에는 머리가 많이 아플지도 모르니까, 미리 진통제를 먹게 하는 것이다. 밤 사이 마른 입술에 머그컵을 대 주자 키세가 몇 번이고 덧그린 목울대가 느리게 울렁였다.

약을 삼키기가 무섭게 카사마츠는 키세에게 쓰러지듯 몸을 기댔다. 키세의 품은 이불만큼 푹신하지는 않았지만 카사마츠가 열이 미지근한 얼굴을 파묻기에는 좋았다. 키세는 그 등을 달래듯 토닥이고, 가늘게 근육이 선 목덜미에 짧게 키스했다.


"푹 자고 있어요. 일어나면 비가 그칠 검다."


온 체중을 기댄 카사마츠를 살살 떼어내서 다시 침대에 누이고 턱 바로 아래까지 이불을 끌어올려 준다. 이불을 덮은 가슴께를 몇 번 토닥토닥하다가는 휴대전화의 알림등이 깜박이는 것을 보고, 키세는 겨우 허리를 일으켰다. 일하러 나가기까지의,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쓴 여유 시간이다.


"이따가 밥 꺼내 먹어요. 굶으면 간식 안 사올 검다!"


구두에 발을 쑤셔넣으면서 외치는 소리는 보통보다 좀더 높고 밝다. 거기에 카사마츠는 한 마디도 답해 주지 않았지만, 그가 컨디션만 회복하면 다시 입을 열고 세 끼 밥을 충실히 먹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어서, 키세는 실망하지 않았다. 스무 살의 키세는, 어른이다. 그걸 카사마츠도 인정했으니까 오늘과 같은 모습을 몇 번이나 보여 주는 거라고, 그는 스스로 생각하고 만족했다.

찰칵, 하고 현관문 잠기는 소리가 들리고, 집안은 다시 적막. 카사마츠는 다시 이불 속으로 머리까지 파고들었다. 봄은커녕 이제 초여름이 보일 듯하고 바깥 공기라고는 조금도 들어오지 않는 방인데도 한기를 느껴 몸을 웅크린다. 비가 꽤 세차게 내리는지, 쏴------하고, 샤워기 소리 같은 빗소리가 끊기지도 않고 계속됐다. 

카사마츠는 이불을 안고 조금 울었다. 들을 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도 울음소리는 목 안에서 억눌렀다. 눈물만큼은, 아직 키세에게 보여 주지 않은 마지막 약점이었다.




-- (이어지는 페이지가 아닙니다) --




6월 O일 흐림


(전략)

그보다는 그냥, 끌어안고 잔다는 감각 자체가 새삼스러워졌기 때문이다. 단 며칠 떨어져 있었을 뿐인데 혼자 잠드는 게 익숙해져 버렸다. 아니, 익숙함이라고 치면 지난 몇 년간은 카사마츠와 나란히 누운 횟수가 더 많으니까 꼭 그렇지도 않다. 하지만 한 번 껄끄러움이 끼어든 마음은 눈 깜짝할 사이에 표면이 까슬까슬해져서 얼른 착 감겨들지 않는다. 스스로도 화가 날 정도로.


“……그래.”


일 미터도 마지못해 떨어져 있는 같은 방 안에서, 카사마츠의 목소리가 미약한 기울기로나마 떨어져 내리는 것을 들었다. 자기 발끝을 내려다보면서, 있을 수 없겠다고 생각하는 일을 묻던 것과 비슷한 목소리다.


‘결혼할래? 였지.’


어차피 내가 있을 곳을 만들 수는 없어. 그것도 네 곁에. 그렇게 말하는 게 들리기라도 하는 것 같아서 키세는 그로부터 슬쩍 등을 돌리고 옆으로 누웠다. 한 쪽 귀가 베개에 눌려 바깥 소리를 차단하지만, 애당초 밖에서 시작한 게 아니니까 멎지 않는다.


‘결혼하자도 결혼해 줘도 아니고.’


왜 구원조차 필요 없다고 하는 거야.




-- (이어지는 페이지가 아닙니다) --




6월 X일 흐림


(전략)

생각해 보면 어느 날은 키세가 몇 번이고 사랑을 말해도 거기에 '대답'을 할 뿐 마주 사랑해 주지 않았다. 선배가 있어서 정말 행복함다. 응, 나도 네가 없으면 안 돼. 문맥 안에서 틀리지 않는 말을 잘 할 뿐이었다. 카사마츠가 속에 딴 생각을 품고 있는지, 아니면 그마저도 생각할 힘이 없는 건지는 그 날 키세가 받아들이기에 따라 다르게 느껴졌다. 다행인지는 몰라도 키세에게는 그 묘한 건조감에 진득하게 붙어서 고민할 만한 여유가 없었으니까.


'그게 몸이 안 좋아서 그런 게 아니라.'


카사마츠가 정상 범위에 간신히 포함되는 피로 상태에 있다는 건 서류로 증명되어 있다. 조금만 움직여도 추욱 늘어지는 것도, 키세와 눈도 안 마주치려고 하는 아침이 오는 것도, 두통과 미열에 짓눌려서 묻는 말에 대답하지 않는 것도.


'어쩌면 우린,'


기저에서 스멀거리던 이질감이 덮쳐 올라온다.


‘이대로…….’ 


정신이 없어서 미처 생각을 못하고 있었지만 내심 신경 쓰고 있던 부분이었다.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지만, 한 번 기울기 시작하면 마음은 한 방향으로 내달려 버리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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