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긴 날

[먹립/마유카사] 오티의 취객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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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립/마유카사] 오티의 취객

motschi 2016. 4. 15. 19:23

* alpenmilch.tistory.com/56 의 내용과 이어집니다.




  “야, 카사마츠. 너네 방 어디냐니까?”

  “우웅…….”


  수많은 고유명사와 그 사이사이의 관계를 알아 두어야 하는 취미는 직접 경기해 본 적도 없는 어떤 학교의 전 주장 이름까지 기억하게 했다. 동년배들 사이에서는 농구 잡지에 이름이 실리고 어떤 대명사처럼 생각될 만큼 유명세가 있는 선수이긴 하지만, 거기까지 마유즈미가 알 바는 아니었다. 단지 등 위에서 한 짐의 무게를 얹은 취객을 돌려보내야 할 뿐이었다.


  “……속,”

  “속?”


  마유즈미의 등과 과잠 사이에서 몸이 급격히 따끈따끈해지고 있는 카사마츠는, 꼭 대답처럼 작게 속삭였다.


  “속 안 좋아…….”

  “야, 잠깐. 여기선 안 돼!”


  잘못 건드렸다. 카사마츠는 자기가 들러붙어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 겨를도 없는 것 같다. 같이 술을 마시던 친구라고 착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게 무슨 상관인가. 등에 닿아 있는 따끈한 윗배가 정말로 꾸릉꾸릉 소리를 내는 것 같아서 마유즈미는, 실로 오랜만에 달리기 시작했다. 운동선수로서 가능한 스피드를 다해서, 그리고 절대로 허리 위가 흔들리지 않도록.



***



  기침소리와 토하는 소리가 마구 섞여서 문을 넘어온다. 급한 대로 뛰어 들어온 자기 과 방에는 술을 마시다 먼저 케이오된 사람들이 모여 잠들어 있었다. 모두 잔다기보다는 알코올 농도가 한계를 넘어 의식이 끊어져 있는 것에 가까웠으므로, 화장실에 밀어넣은 카사마츠가 괴로운 소리를 내면서 먹은 것을 토해도 방해받지 않았다. 다만 자기 침실이 이렇게까지 무덤 같을지는 몰랐던 마유즈미만 눈앞이 아찔해지는 기분이었다. 구석에서 북라이트라도 켜고 책 좀 읽다 잘 생각이었는데, 일단은 죽은 자들의 코 고는 소리가 엄청났다. 차라리 깨 있는 사람들이 떠드는 걸 듣고 있는 게 나았을지도 모른다.

  거기까지 소리 없이 불평하고 있었을 때, 마유즈미는 어느 순간부터 화장실에서 새어나오던 소리가 뚝 끊겨 있음을 깨달았다. 깜짝 놀라서 화장실 문을 벌컥 열자 아니나 다를까, 카사마츠가 양손으로 변기를 붙잡은 채로 축 늘어져 있다.


  “야, 더럽잖아. 다 토했으면 일어나.”


  마유즈미는 난폭하게 카사마츠의 어깨를 붙잡아 일으켜서 세면대 위로 머리를 꾹 눌렀다. 속으로는 중얼중얼 신세를 한탄하면서 찬물을 세게 틀어 카사마츠의 얼굴을 문질러 닦는다. 입가에는 먼저 물을 퍽퍽 끼얹어서 찝찝함을 조금이나마 덜고, 열이 훅훅 올라오는 뺨도 씻겼다. 카사마츠는 눈에 물이 들어가는 게 괴로운지 제정신이 아닌 와중에도 두 눈을 꼭 감는 게 어린애 같다. 손에 닿는 뺨이 생각보다 포동포동해서 더 그랬다.

 

  “이제 속 괜찮지. 너 있던 방 어디야?”

  “…….”


  도리도리. 대답도 꼭 애 같이 한다. 마유즈미는 드물게도 부아가 치미는 걸 느꼈지만 눈을 꾸욱 감았다 뜨는 것으로 다스렸다. 사정이 있겠지. 정말 방 번호가 기억이 안 나거나, 아니면 그 방에서 이렇게 될 만큼 억지로 술을 먹였거나.

  마유즈미가 어깨를 안아 부축하지 않으면 종이 인형처럼 늘어져 버리는 카사마츠는, 술에 절어 잠든 사람 더미 옆에 눕히자 기다린 것처럼 눈을 감았다. 그리고 몇 초도 안 돼서 안정적으로 쌕쌕거리면서 깊은 잠에 빠져 버린다. 옆에 쌓여 있는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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