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긴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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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립/아오카사] 고장난 것에 대하여

motschi 2015. 4. 18. 15:37



  가벼운 것이 가볍게 느껴지지 않는 날이 있다. 들숨 날숨처럼 지극히 자연스러워 의식조차 안 되는 것이, 어느 날인가는 약속도 없이 끔찍한 자극이 된다. 꽃잎보다도 보드라운 말 한 마디가 예리한 둔기처럼 강하게 심장을 찢는다. 그것이 공격이 아니더라도, 자기를 향한 게 아니더라도. 안팎으로 멍들고 찢긴 몸은 야위어서 후들거렸다.


  오늘은, 비. 유리창에 굵은 비가 떨어졌다. 후둑후둑 하는 소리가 점점 확장되어 무시무시하게 창문을 두드린다. 그것은 너무 잦고 촘촘한 나머지, 구름만큼 커다란 냄비에서 기름이 팔팔 끓는 소리처럼 들리기에 이르렀다. 놀라서 창문을 올려다보자, 커다란 기둥 같은 것들이 쏟아져 내리는 것 같다. 미처 깨닫지 못한 어딘가에서의 잘못을 단죄하듯이.

  카사마츠 유키오는 그에 순응하기로 했다. 프린터의 용지함에서 새 종이를 한 장 꺼내고. 잉크가 넉넉하게 흘러나오는 새 펜을 연다. 창문을 두들기는 징벌에 대해서는 우선, 펜을 들지 않은 왼손으로 가슴을 누르는 것으로 보류를 선언했다. 간신히 호흡을 잡고 나서 할 일은, 유서를 쓰는 일이었다.


  우선은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을 쓰기로 했다.


 아오미네.


  손에 익지 않은 펜이 서툴게 두 글자의 한자를 썼다. 

  다음 말이 떠오르지 않아서 다시 한 번 썼다.


  아오미네...


  소리 없이 입술을 움직여서 그것을 읽고, 이번에는 그 아래에 몇 줄의 공백을 준 뒤 새로 썼다.


  사랑하는, 다이키.


  구토처럼 울음이 터져나왔다. 비명을 지른다고 생각했는데 잔뜩 쉰 흐느낌 소리밖에 나오지 않았다. 왼손으로 꾹꾹 누른 동요는 노력한 보람도 없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와 넘쳐 흘렀다.




  소파 아래에 던져 놓은 휴대전화가 몇 번이고 울렸지만 카사마츠는 받으러 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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