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긴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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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립/아오카사] 원펀치 쓰리강냉이

motschi 2015. 2. 28. 23:54

 


  "아아아아, 아파, 아파."

  "아플 만 하지!...요. 붓겠네, 이거. 입 좀 벌려 봐요."


  카가미 타이가의 맨션, 소파에 억지로 앉혀진 카사마츠 유키오는 참 못난 꼴을 하고 있었다. 덜 진정돼서 어깨까지 들썩이는 호흡 하며, 살짝 피가 비치는 입술 끝. 거기다, 빨개져서 너덜너덜해진 뺨까지. 제 앞에서 구급상자를 펼쳐놓고 바쁘게 움직이던 카가미의 손이 그 뺨에 닿자마자 못난 비명을 터뜨린다. 카가미는 몇 번 써 보지 않은 구급상자에서 뭘 꺼내야 할지를 고민하면서, 손가락으로 이미 조금 부풀어오르기 시작한 카사마츠의 입술을 벌렸다. 카사마츠가 어깨를 움찔하면서 기함한다.


  "시, 싫어!"

  "아니, 무슨 병원 온 꼬마도 아니고... 피 나잖아, 요! 빨리, 아-"

  "......"


  싫은 건 싫더라도 자기 입 안에서 선명하게 느껴지는 피맛은 더 싫은 것 같다. 카사마츠는 눈썹을 티나게 찌푸리면서 천천히 입을 벌리고, 카가미는 손가락으로 그 입술을 살짝 붙잡고 안을 살폈다. 밖으로 나온 것보다 더한 피. 혀와 뺨 안쪽은 물론이고 아랫니 사이사이까지 다 피가 돌아서 빨갛다. 어딘가 찢어진 게 틀림없다.

  카가미는 구급상자에서 솜을 꺼냈다. 핀셋으로 적당량을 집고 입술 밖으로 샌 핏자국부터 훔친다. 그리고 그대로 그것을 카사마츠의 입 안에 넣어 대강 피를 닦아냈다. 섬세한 손길은 아니라서 앞니에 핀셋이 닿아 달각 하는 소리를 내자, 눈에 띄게 두려워하는 표정을 짓는다.


  "소독하고 지혈할 건데..."

  "아, 안 하면 안..."

  "안 되지. 입 벌려. ...요."


  카가미가 새 솜에 과산화수소수를 조금 묻혀서 집어들자, 카사마츠는 눈을 질끈 감았다.



* * *



  그 사이, 쿠로코 테츠야는 중학교 때 가장 친했던 친구를 잡아끌고 마지버거에 가 있었다. 익숙하게 바닐라셰이크를 주문하면서 데리야끼 버거를 먹겠느냐고 묻자, 덩치 큰 친구는 말하기도 귀찮은 듯이 고개를 돌린다. 대충 콜라를 주문하고 창가 자리에 끌고 가 앉히자, 안 먹겠다고 한 게 무색하게 반 컵을 한 번에 쭉 들이킨다.


  "시원하게 때렸네요. 선배를."

  "......유키가, 먼저"

  "아오미네 군의 한 방이 더 컸습니다."


  아오미네 다이키의 얼굴도 말이 아니었다. 한심한 얼굴이지만, 탄산음료를 한 번에 많이 들이켰기 때문은 아니다.

  약 30분 전, 아오미네는 카사마츠에게 멱살을 잡혔다. 폭언을 듣고, 그 손목을 붙잡자 이번에는 발이 날아왔다. 몸의 중심축이 흔들릴 정도는 아니었지만, 또래 남자애들을 여럿 때려 본 선배의 손발은 꽤나 매웠다. 그것도, 술을 마신 것도 아니고, 제정신이었고.


  "......엄청 날뛰더라."

  "아오미네 군도 마찬가지 아니었습니까?"

  "그거야 몇 방 맞으면 화나지, 나라도."


  카가미와 쿠로코는 주변을 지나던 중, 카사마츠가 아오미네에게 화려한 발차기를 날리는 것을 목격했다. 처음에는 길에서 몸싸움을 하는 남자들이 누군지도 모르고 구경하고 있었는데, 큰 쪽이 작은 쪽에게 몇 대 맞더니 결국 못 참고 주먹을 날리는 걸 보고는 깜짝 놀라 달려갔다. 작은 쪽이 그 주먹 방향으로 휩쓸려 넘어질 정도로 센 것이었기 때문이다. 가까이 가 보니 그 조합은 기습이라도 당한 듯한 표정의 아오미네와, 아예 어깨로 숨을 쉴 정도로 호흡이 불안정한 카사마츠였다.

  카가미는 약자에게 상냥하다. 어찌되었든 사람을 때려눕힌 건 아오미네다. 짧은 판단으로 주머니 안에서 꽉 쥔 주먹을 올리려던 것을, 타이밍 좋게도 쿠로코가 제지했다. 카가미 군, 카사마츠 선배의 치료를 부탁합니다. 아오미네 군과는 제가 얘기할 테니까요. 그래서 아직도 일어날 생각을 못 하고 있는 카사마츠를 어색하게 업고, 자기 맨션으로 데려갔던 것이다. 그리고 쿠로코는 아오미네를 맡았다.


  "카사마츠 선배한테 무슨 잘못을 한 겁니까?"

  "잘못 안 했어!"


  큰 소리를 뻥 터뜨려도 쿠로코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하지만 등 뒤 테이블에서 사람들이 돌아봤을 것이다. 아오미네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꼭 중학교 3학년, 아직 어렸을 시절 의도와 다르게 나쁜 녀석 취급을 받았을 때 같은 표정이다.


  "키스 좀 하려고 한 것 뿐인데."



* * * 



  "아, 아, 아 아파, 그만..."

  "입 다물지 마, 요! 이거 해야 나중에 안 덧나잖아. ...요."


  아오미네의 주먹에 어딜 어떻게 맞은 건지는 몰라도, 뺨 안쪽이 약간 찢어져 있다. 큰 상처는 아니지만 출혈이 좀 있고, 입 안 감각은 다른 곳보다 더 예민할 테니 아파할 만도 했다. 하지만 소독 솜이 좀 닿는 것만으로 눈을 질끈 감고 눈물을 떨어뜨리기 시작한 건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존재감이 옅은 자기 팀메이트도 코트 안과 밖에서의 모습이 많이 다르긴 하지만, 카이조의 날카로운 주장은 더했다.

  카가미는 카사마츠를 달래 가며 상처 소독을 마쳤다. 피가 조금 묻어난 소독 솜을 대충 내려놓고, 이번에는 거즈를 뭉쳐 어금니 바깥쪽에 대자 다행히 상처 위치에 딱 맞는다. 거기에 얼음을 한 개 꺼내 와서 물게 했다. 거기다 급한 대로 비닐봉지에 남은 얼음을 쓸어담아 와서 뺨에 대 주었다. 이 정도면 집에서 하는 지혈치고는 훌륭한 수준일 것이다.

  붓기와 출혈은 금세 가라앉을 텐데, 카사마츠의 눈물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소리없이 눈물만 방울방울 떨어뜨리던 게, 이제는 대놓고 훌쩍거리기 시작했으니까.


  "...아오미네, 이제 보니 무서운 놈이네. 선배를 이렇게 패고."

  "......"

  "보나마나 건방진 소리 했겠지. 그걸 때리게 뒀어? ...요?"

  "아니, 다이키는, 잘못, 없,는데."

  "뭐?"


  카사마츠는 얼음주머니를 들지 않은 손으로 대충 눈물을 훔쳤다. 거즈와 얼음으로 입 안이 차 버린 탓에 발음이 영 엉망이다. 물론 새 눈물이 또 흘러내리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나,한테, 좋,다고, 말하고, (다시 쿨쩍쿨쩍 울려다 꾹 누르는 기색이 역력했다) 키, 키스, 하려고 해서..."

  "키스?"

  "좋아, 하는, 건, 맞지만, 아무래도, 무서워, 서..."


  아직도? 카가미는 그 말이 맴돌았다. 카사마츠와 아오미네가 함께 있는 건 몇 번이나 본 적이 있고, 그 둘이 평범한 사이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암묵적으로 전해지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것도 당장 며칠 안 된 사실인 것도 아니고. 그런데 듣자하니 카사마츠는, (아마 처음으로) 키스를 시도한 아오미네가 무서워져서 먼저 주먹이 나갔다는 것 같다. 있을 수 있는 일인가.


  "키스가, 무서워요?"

  "키, 키스, 하고, 난 남자,니까..."


  카가미 집 냉장고의 얼음틀이 꽤나 큼직하긴 하지만, 저렇게까지 말을 못 하게 커다랬던가. 경기 중에 카사마츠가 쩌렁쩌렁 울리는 발성으로 소리치던 게 생각났다. 집중해! 한 골 넣고 가자! 거기에 비하면 지금 반쯤은 얼음이며 울음에 걸려서 토막토막 끊어져 버린 목소리. 카가미는 답답했지만 꾹 참고 다음 말을 기다렸다.


  "싫, 어지면, 어떡해...?"

  "하아?!"


  아, 큰 소리 안 내려고 했는데. 카가미는 자기도 모르게 화내는 듯이 큰 소리를 터뜨리고, 재빨리 카사마츠의 표정을 살폈다. 다행히 카가미의 반응에 더 쪼그라들거나 화를 내거나 하지는 않는다. 눈가는 눈물 범벅이고, 뺨은 거즈와 얼음과 붓기로 잔뜩 커져 있으면서.


  "아니, 카사마츠...선배, 아오미네랑 도대체 몇 달을 있었는데... 아아."


  쇼크에 빠진 카가미를 도와 주듯이 초인종이 울렸다. 아마 아오미네를 대동한 쿠로코일 것이다.



* * * 



  "유키."


  쿠로코에게 붙들린 포로처럼 카가미의 맨션에 들어선 아오미네는, 소파에 앉은 채 한 쪽 얼굴이 부풀어 있는 카사마츠를 내려다보았다. 어떻게 보면 좀 억울한 일이다. 자기는 이유도 모른 채 몇 대나 맞았는데, 단 한 번 반격한 걸로 저렇게 피해자 같은 얼굴이 되다니. 하지만 쿠로코와 상담을 하고 나니 대충 맥락은 잡히는 것 같았다.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사람에 대한 일을 다른 사람에게 들어야 한다는 건 화나지만.

  아오미네는 바닥에 피 묻은 솜이 떨어져 있는 걸 보고,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아팠겠네. 사정이야 어찌되었든 소중한 사람에게 저 만큼의 상처를 낸 건 자기 자신이다.


  "그... 때린 거, 미안하다."


  쿠로코가 뒤에서 허리께를 발로 찼다. 무조건 사과하라고 지시를 받은 것이다. 그 뒤는 알아서 하라는 가차없는 말을 들었지만.


  "그리고... 갑자기 그, 키스하려고 해서, 무서웠냐?"

  "아, 아니..."


  카사마츠가 얼른 손등으로 눈가를 부볐다. 저, 저, 비비면 안 되는데. 재빠르게 물러나서 쿠로코 옆에 선 카가미는 잔소리를 하고 싶었지만 최소한의 눈치는 있었으므로 입을 다물었다. 


  "나는 남자니까... 진짜로 키, 키스, 하면,"


  키스라는 말을 하는 것도 버거워하는 건가. 이 사람 정말 두 살이나 많은 건가. 하지만 걱정했던 것보다는 빨리 핵심으로 들어가서 다행이었다. 오늘 본 건 답답하고 나약한 모습뿐이지만, 카사마츠는 변죽만 울리는 성격이 아니다. 그것만큼은 카가미도 파악하고 있었다.


  "네가 싫어할까 봐."

  "하아?!"


  이 부분은 절대 이해 못 하겠지만. 아오미네도 카가미와 똑같은 반응을 터뜨렸다. 아오미네가 안에서 욱 하고 올라오는 것을 그대로 얼굴에 드러내자, 뒤에서 쿠로코가 다시 발길질을 했다. 사전에 당부해둔 게 있는 듯했다. 아오미네는 불만스럽게 친구를 한 번 돌아보고, 다시 한숨을 쉬고, 카사마츠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고귀한 사람을 대하듯이 부드럽게 한 쪽 무릎을 꿇고 앉아서 눈 높이를 맞춘다.


  "그런 게 무슨 상관이야. 내가 유키를 왜 싫어해."

  "......"

  "하자, 키스."


  야, 설마. 카가미는 입을 뻐끔거렸지만 아오미네가 더 빨랐다. 밤톨처럼 짧게 깎은 카사마츠의 뒷머리를 익숙하게 붙잡고, 무릎이 바닥에 닿지 않은 쪽 다리를 축으로 해서 쉽게 접근한다. 카사마츠의 반응은 어떤지 보고 싶지만 아오미네에게 가려져서 얼굴이 잘 안 보인다. 아오미네는 그대로 살짝 얼굴을 돌려서 입술을 겹치고 우물대듯이 움직였다. (카가미는 자기도 모르게 탄식이 나왔다. 하, 참.)


  "...으웁!"

  "...어?!"


  몇 초나 지났을까, (그새 혀를 집어넣은 모양이네요. 하고 쿠로코가 속삭였다. 카가미는 얼굴이 벌개졌다.) 카사마츠가 얼른 머리를 뒤로 뺐다. 아오미네도 뭔가에 놀란 건지 동시에 비명 같은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똑같이 눈썹을 찡그리고.


  "유키, 입 안에 뭘 넣고 있는 거야?"

  "...거즈. 지혈 중이다. 건드리면 아프다고."


  너 때문이잖아. 험하게 인상을 찌푸린 얼굴은 한 쪽이 부어올랐지만 강단 있는 선배의 것으로 돌아와 있다. 카가미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진행이지만, 카사마츠에게는 좋은 방향으로 전환이 되는 순간이었던 것 같다. 목소리도 단숨에 낮아져 버린 듯한 기분이다. 그렇다는 것을 느낀 건 아오미네도 마찬가지인지, 안심한 듯이 피식 웃는다.


  "그럼 찬 거 먹어야겠네. 아이스크림 사 줄게. 초코?"

  "아니."

  "단 거 좋아하잖아?"

  "카라멜 초코 크런치."


  알았어, 알았어. 가자. 아오미네는 놀리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큰 동작으로 카사마츠를 정중하게 부축해 일으켰다. 카사마츠는 기겁하며 욕설로 대응했지만 아주 싫은 기색은 아니었다.

 

 

 

  도쿄의 어느 맨션, 카가미 씨의 집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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