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긴 날

[모리야마/카이조] 모리야마 요시타카의 우울 본문

KRBS

[모리야마/카이조] 모리야마 요시타카의 우울

motschi 2015. 2. 14. 01:37


* ㅃㅇ님과 ㅇㅅ님과 함께한 불금 전력!

* 황립을 아주 조금 생각하고 썼지만 언급이 있을까말까 한 정도입니다.



 

  언제부터 시작된 문화인지는 몰라도, 대학 입시가 끝나고 겨우 한숨을 돌릴 때쯤 그 날은 돌아왔다. 빵집과 과자점은 물론이고 편의점이나 카페, 심지어는 문구점에까지도 초콜릿 디스플레이가 섰다. 수많은 가게만큼 수많은 여학생들이 모여들어서 저마다 예쁘게 포장된 것, 또는 앞으로 포장해야 할 것을 사 갔다. 그리고는 단 하루 주어진 시간 동안, 가방에 소중하게 넣어 온 것을 누군가에게 전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기본적으로는 애정의 가장 쉬운 표현이었지만, 지극히 인간적으로 당신을 가깝게 느끼고 있다는 의미를 갖기도 했다. 카이조 고등학교 남자 농구부의 주장과 부주장, 그리고 주장이 될 뻔했던 인물(자칭)에게는 아무래도 후자가 더 익숙했다.

  

  모리야마 요시타카는 조금 우울했다. 이름이나 의미 같은 건 아무래도 좋았다. (어쨌든 줬다는 건 그만큼 나를 생각했단 거야. 수줍어서 하트를 못 붙인 거야!라고 열변을 토한 전적이 있다.) 문제는, 엄청난 양의 초콜릿이 오가는 것을 학교 차원에서 막으려 했다는 데 있다. 고가의 선물을 주고받는 것을 자제하길 바랍니다. 학교에 음식물을 가져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주의사항이 내려와도 청춘남녀가 그것을 귀담아 들을 리가 없다. 결국 카이조 고등학교는, 2월 14일을 임시휴교일로 만들어 버렸다. 학교에 오질 않으니 학교에서 초콜릿을 주고받을 일도 없다. 적어도 학교에서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카이조 고등학교의 발렌타인 데이는 2월 13일이 되어 버렸다. 날짜가 옮겨졌을 뿐이지 달라진 건 없다. 카나가와의 초콜릿 산업은 여전히 활발했고, 모리야마는 고등학생이 되고 처음으로 자기 생일을 저주했다.


  "매년 생일 케이크가 발렌타인 케이크면 어떨 것 같냐? 찌인-한 초콜릿에, 하트 모양 초콜릿이 또 있어."

  "그건 맛있을 거 같은데."


  생축! 하고 짧게 던지는 말과 함께 등짝을 얻어맞은 모리야마는, 매년 2월 13일이면 늘어놓는 푸념을 다시 꺼내놓았다. 이 때가 되면 가장 종류도 많고 지분율도 높은 것은 발렌타인 케이크다. 작년에는 라즈베리로 하트가 그려져 있었다고! 억울해하는 모리야마의 옆에서, 카사마츠는 슬쩍 입맛을 다시며 무심하게 대꾸하곤 했다.


  "생일 선물도 항상 초콜릿이야. 이틀을 하나로 퉁친다고."

  "그러고 보니 모리야마 초콜릿 싫어한다고 했지."


  가운데 놓은 카사마츠의 머리 위로 모리야마를 넘겨다보며, 이번에는 코보리가 말했다. 3학년 초에 교실에서 나왔던 얘기다. 반 친구들과 여럿이 섞여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중, 모리야마의 생일에 대한 화제가 나왔던 것이다. 모리야마는 억울해하는 레퍼토리를 한 번 돌린 후, "초콜릿도 좋지 뭐~"라고 하는 옆 분단 남학생의 말에 발끈해서 소리쳤다. 초콜릿 진짜 싫어!


  "아니야… 생일 선물로 초콜릿을 주는 게 싫다는 거잖아. 다들 왜 말을 못 알아들어."


  모리야마는 과장된 동작으로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그도 그럴 게, 아침에 농구부 후배들이 준비해 준 생크림 케이크(초콜릿은 싫다고 기함을 해서) 말고는 그의 생일이라는 표시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내심 기대를 하긴 한 모양인지 교실에서 여학생들의 움직임을 눈으로 쫓는 듯하더니, 아무 소득 없이 하루 일과가 끝나 버리자 눈에 띄게 우울한 티가 났다. 3학년, 대학 입시까지 끝난 여학생들은 각자 자기 남자친구를 잘 찾아서 떠난 관계로, 의리라는 이름을 붙여서 반 남학생들에게 하나씩 돌리던 초콜릿은 이미 옛날 기억이 되어 버렸다.

  생일 선물 하나 못 받은 불쌍한 친구를 위해, 카사마츠는 주머니를 뒤졌다. 금박 비닐로 싼 동그란 초콜릿 하나가 나온다. 한 손으로 쥐어도 충분할 만큼 작지만, 초콜릿은 초콜릿이다. 쉬는 시간에 이름도 잘 모르는 여학생이 와서 주고 간 것이다. 자기 책상에서 엎드려 졸던 카사마츠는 "카사마츠 군!" 하고 부르는 여자 목소리에 놀라 경련을 일으켰다. 책상이 무릎에 걸려 들썩하는 것에 잠깐 웃고, 그녀는 초콜릿 한 알을 카사마츠의 책상에 놔 주었다. 카사마츠는 얼굴에 피가 확 몰려서 고맙다는 말도 못 했지만, 모리야마를 향해 자신만만하게 웃어 줄 수는 있었다.


  "불쌍하니까 이거 한 입 준다."

  "한 입? 유키쨩, 한 입이라고 했냐? 아니, 그보다 너 초콜릿 받았잖아!"

  "...유키쨩이라고 불렀으니까 안 줄 거야!"

  "줬다 뺏는 거 없어. 내놔!"

 

  모리야마는 카사마츠의 손바닥에서 초콜릿을 낚아채, 포장째로 눌러서 살짝 부수었다. 깨끗하게 잘라질 만한 크기는 아니지만 조각조각을 건져 먹을 수는 있게 될 것이었다. 조심조심 포장을 벗기고, 작게 쪼개진 초콜릿 쉘 조각을 손가락으로 집어 올린다. 조각 하나가 간신히 손톱만한 크기이긴 하지만 딱히 낯선 일도 아니다. 카사마츠도 익숙하게 다른 조각을 집어 입에 넣었다. 모리야마가 약간 몸을 틀어 초콜릿을 든 손을 내밀면, 코보리도 검지와 엄지손가락을 모아서 가져왔다. 셋이서 그렇게 초콜릿 한 알을 나눠 먹었다. 단 맛을 채 느끼기도 전에 끝나 버리는 양이다. 모리야마는 아주 조금 더 슬퍼졌다.


  "너무 조금이네. 이거라도 먹을래?"


  빈 비닐 포장을 꾹꾹 눌러 뭉치던 모리야마는 코보리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스포츠백을 열고 뭔가를 꺼내려고 하고 있다. 빳빳한 종이 상자 같은 게 가방 안을 스치는 소리.


  "허..."

  "딱 세 개네. 하나씩 먹자."


  코보리가 손에 든 것은, 초콜릿이다. 여기저기 상점에 선물용으로 디스플레이 되어 있던 바로 그것이다. 비싸 보이는 조개 모양 초콜릿 한 상자, 꽃봉오리 상태의 장미 모양 초콜릿 한 상자. 그리고, 카사마츠가 한 개 얻어 온 금박 포장 초콜릿의 16개들이 세트 한 상자. 코보리는 손에 잡히는 대로 한 상자씩을 각각 모리야마와 카사마츠에게 건네면서 미소지었다.


  "이거 뭐야?"

  "뭐긴, 초콜릿이지. 아까 복도에서 만났는데 주더라."


  모리야마가 멍하니 묻는 말에 대답하는 것도 새삼 시원시원하니 대단해 보인다. 이거, 비싸 보이는데. 카사마츠는 자기 손 안으로 건너온 장미 초콜릿 상자 뒷면에 작은 포스트잇이 붙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거기에는, 동글동글한 여자 글씨로, 코보리 선배♡






 

* 모리야마는 분개했지만 받은 초콜릿은 다 먹었다.

* 카사마츠의 몫이 된 장미 초콜릿 안에는 위스키가 들어 있었다. 달아서 맛있다면서 신나게 먹은 것까지는 좋았는데, 가면 갈수록 혀와 다리가 풀리기 시작한 건 안 좋았다. 모리야마와 코보리는 카사마츠를 근처 놀이터 그네에 앉혀 놓고 술이 깨기를 기다려야 했다.

* 2월 13일에 촬영 일정 때문에 학교를 빠진 키세는 2월 14일에 카사마츠를 불러냈다. 학교를 아예 안 갔으니 초콜릿을 전혀 못 받았을 텐데, 또 어디서 받았는지 초콜릿으로만 한 짐을 들고 왔다. 그리고는 그걸 전부 카사마츠 앞에 쌓아 주었다. 선배, 단 거 좋아하잖슴까. 난 많이 있어서요. 이미 전날 코보리가 준 충격이 있던 터라, 카사마츠는 특별히 놀라지도 기분 나빠하지도 않고 평온하게 키세를 발로 찼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