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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립/키카사] 유키, 형아는 좀 섭섭하구나

motschi 2014. 9. 14. 01:39


지금 카이조 고등학교 남자 농구부의 주장은 카사마츠 유키오다.

그리고 나, 모리야마 요시타카는 그 카사마츠의 형아 역할을 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카사마츠가 1학년이었을 때는 키도 160 정도로 작고 지금보다도 훨씬 어려보이는 얼굴이었다. 정신연령과는 관계없이 눈이 커다랗고 볼살이 남아있으면서 짧은 앞머리 아래 드러난 이마도 동그란 게 톡톡 때리고 싶어질 정도였다. 나도 지금보다는 작았지만 카사마츠보다는 컸다. 코보리와 둘이서 카사마츠를 가운데 두고 서면 혼자 아래로 푹 꺼지는 높이. 카사마츠는 일일이 딴지를 걸었지만 우리는 얘를 막내동생처럼 귀여워한 편이었다. 농구부에 입부해서 처음 져지를 살 때, 카사마츠는 앞으로 키가 클 거니까 한 사이즈 크게 입겠다고 큰소리를 뻥뻥 쳤다. 진짜로 (다행히) 쑥쑥 크긴 했지만, 무슨 교복 맞추냐고!

뭐 확실히 정신적인 면은 인정하지만. 어려 보이는 외모와 달리 진하고 억센 눈썹만큼 정신은 단단했다. 그게 너무 곧고 고지식한 감이 있어 좀 불편해하는 사람도 있었던 것 같지만... 딱히 잘못한 건 없으니까 문제없다고 생각한다. 카사마츠는 단순하게, 농구를 잘하고 싶으니까 연습을 한다. 열심히 한다. 선배가 시킨 건 지시받은 거니까 한다. 최대한 완벽에 가깝게. 선배가 시비를 걸면? ...그것도 그대로 받아들인다. 가끔 그냥 말도 안되게 툭툭 치이는 경우에는 내가 먼저 화가 날 정도였지만 본인은 신경을 안 쓰는 건지 꾹꾹 참는 건지.

2학년 인터하이 때는 굉장했지.
잘못했으니 벌을 받는다는 생각이 완전히 꽉 차 있었으니까. 쳐맞고 욕 먹고, 나와 코보리가 저거 슬슬 말려야 하지 않나 고민할 때 카사마츠는 퇴부서를 붙들고, 처음으로 울었다. 그리고 막내처럼 달래줬을 때 처음으로 반발하지 않고, 안아주면 또 그대로 안겼다. 그것도 뭐 잠깐이었지만. 주장을 맡게 되고 생각이 복잡한 것 같길래 또 부둥부둥 품어줬더니 니킥을 날렸다.

그렇다고 우리 유키(라고 부르면 싫어하지만)가 완전히 어른이 되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아직도 귀여운 면이 잔뜩 남은 우리 막내동생이지. 키가 클 수 있는 가능성은 다 열어놓겠다고 항상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우유는 나나 코보리보다 한 사이즈 큰 걸 먹는다. 그러면서도 단 음식을 정말 좋아해서 항상 매점에서 초코우유와 흰우유를 놓고 고민한다. 게다가 이성관계로는 아직 초딩 수준이라, 연애는커녕 제대로 말도 못 붙인다. 웬만하면 내가 대신 얘기해 주는데, 이건 또 이거 나름대로 보호자 같은 자부심이 든다.

그런데, 3학년이 되어 이변이 일어난 것이다. 올해 영입한 기적의 세대 키세 료타의 등장으로.
과연 키세는 체격도 크고 손발도 쭉쭉 길고 덤으로 잘생긴 모델님이기까지 했다. 처음 입학했을 때는 아무리 나라도 한대 때려주고 싶을 만큼 얄밉고 오만한 놈이었지만. 아니, 아직 얄미운 놈이긴 하다. 그런 키세를 그나마 지금 정도로 잡아놓은 게 카사마츠다. 사실 잡아놨다기보단 키세가 카사마츠한테 호감을 가지면서 말을 조금씩 듣게 된 거 같은데. 물론 카사마츠는 '때리니까 말을 듣는구나' 라면서 키세를 또 발로 찼다. 아무리 봐도 저놈은 너한테 굽힌 거라기보단 네 말을 '들어주기' 시작한 것 같은데 말이야. 키세는 두 살이나 어린 주제에 카사마츠를 귀여워하기 시작한 것 같았다. 그건 유키의 형아라면 금방 알 수 있는 분위기다. 

그러니까 나는 봤단 말야. 키세 녀석이 같이 걸어가다가 카사마츠의 어깨에 슬쩍 손을 올리려다 마는 거나, 카사마츠가 주먹질을 하면 그 손을 얼른 잡는데 한참 동안 안 놓는 거나. 팬이나 사무소 같은 데서 선물로 간식이 들어오면 혼자 챙겨가거나 부원들 다같이 나눠 먹거나 하는데, 마카롱이나 초콜렛 같은 게 있으면 특히 카사마츠한테 챙겨 주고. 평범한 남고생은 접하기 어려운 디저트류만 놓고 보더라도, 이건 어떤 새로운 전환 같은 거였다. 게다가 카사마츠도 싫은 기색은 아니었고.

"유키짱, 너"
"뒤질래?"
"...카사마츠. 넌 키세한테 되게 잘 말려드네."
"말려들긴 뭘."

퉁명스럽게 대꾸하는 카사마츠의 뒤에서 키세가 스륵 하고 나타나더니 자연스럽게 어깨에 올라탔다. 키세가 훨씬 덩치가 크니까 올라탔다기보단 몸으로 카사마츠의 어깨를 감싸안으면서 내리누르는 듯한 모습이다. 카사마츠는 무거워!!!하고 소리치면서 몸부림을 쳤지만 덩치 차이 때문에 역부족이다. 그 와중에 나는 키세와 눈이 마주쳤다. 

맞다, 저놈은 사실 착한 놈은 아니었지. 시선이 마주친 짧은 순간에 나는 키세의 목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선배는 제꺼임다. 

그리고 다음 순간 키세는 카사마츠의 발뒤꿈치에 찍혀서 또 엄청 엄살을 피우면서 떨어졌다. 아픔다!!!! 하고 가짜인지 진짜인지 모르게 울먹거리니까, 카사마츠는 아프라고 한 거야! 라고 말하면서도 눈으로는 키세의 상태를 살폈다. 봐, 금방 말려들잖아. 보고 있는 사이 키세는 자기 쪽으로 몸을 약간 구부린 카사마츠를 또 낚아채 스킨십을 하고, 또 맞고, 또 엄살로 소란을 피웠다.

아아, 나는 한숨이 나왔다. 코보리, 우리 유키가 시집을 가려는 것 같아. 형아는 좀 섭섭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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