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긴 날

[황립/키카사] 오늘은 그대의 날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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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립/키카사] 오늘은 그대의 날

motschi 2014. 9. 14. 01:46


타카피의 Glory Days 들으면서 씀


***



오늘은 그대의 날 오늘은 우리의 날

 

 

키세는 앞니를 세워 일부러 아프게 입술을 물었지만 효과는 없었다. 입술이며 턱이 바들바들 떨리고 금방 눈앞이 비 퍼붓는 유리창처럼 일렁였다. 불과 몇 초 전까지 자신이 서 있던 곳을 잊어버릴 만큼 그는 동요했다. 밝은 조명이 카메라 플래시와 함께 번쩍번쩍했다. 일순 터져나온 수백 수천의 함성 소리는 오히려 꿈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자신이 서 있는 곳은 농구 코트 위, 관중은 팬미팅보다 더 많았다. 키세는 약간 거칠던 호흡을 진정시킬 생각도 못한 채, 간신히 후들거리는 무릎에 힘을 주어 버텼다.

 

버저 비터였다. 40분 내내 피라도 튈 듯한 접전이 이어지고, 키세는 아슬아슬하게 달려가 마지막 슛을 꽂았다. 휘슬 소리가 날카롭게 공기를 갈랐을 때 키세는 자신의 숨통까지 갈라질 듯한 긴장을 느꼈다. 초 단위도 안 되는 시간이 흘러 스코어보드의 숫자가 바뀌는 것을 확인하자, 그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카이조 고교, 윈터컵, 우승이었다.

 

"키세!"

"잘했어 키세!"

 

하야카와를 선두로 유니폼을 입었건 입지 않았건 상관없이, 부원들이 달려와 키세를 끌어안았다. 몇 명이고 겹쳐서 껴안고 키세의 머리가 숙여질 만큼 힘을 주어 뒷머리를 쓰다듬었다. 키세는 뭐라고 대답하며 웃으려고 했지만, 채 한 음절도 말하지 못하고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유니폼을 입은 레귤러 중에도, 웜업 져지를 입은 벤치 멤버 중에도, 그가 승리를 안겨 주고 싶었던 사람은 없었던 것이다.

 

 

어제보다 아름다워진 당신과 나의 날

 

 

엉망으로 울면서 간신히 정렬을 하자, 정식으로 카이조 고교의 승리가 선언되었다. 카메라와 방송 장비를 든 사람들이 앞다투어 다가와 인터뷰를 요청했다. 우는 키세와 흥분해서 발음이 더 씹히는 하야카와를 대신해 나카무라가 주로 질문에 답했지만, 기적의 세대의 이름 덕분에 키세에게도 질문이 쏟아졌다. 키세는 아직 그치지 않은 눈물이 자꾸자꾸 배어나는 와중에도 열심히 대답했다. 열심히 한 성과가 있는 것 같아서 기쁨다. 좋은 선배들이(여기까지 말하고 한 번 또 눈물이 치밀었는지 잠시 쉬고) 이끌어 준 덕분임다.

 

키세는 져지 소매로 마구 부벼 쓰리기 시작한 눈가를 만지며 선배들을 따라 락커룸으로 향했다. 아직 코트도 관중석도 자신의 몸도 열기가 남아 뜨거웠지만, 복도는 비교적 공기가 찬 편이어서 겨우 울음이 그친 참이었다. 그는 카이조 고교의 이름이 인쇄되어 붙은 락커룸 앞에 마중나온 듯이 서 있던 인물들을 발견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순간 그 순간

my glory days

 

 

"선배..."

 

대견하다고 말하고 있는 듯한 미소로 농구부원들을 맞이한 것은 카사마츠와 모리야마, 코보리였다. 이미 대학생이 된 지 몇 달이나 지나, 고등학생 티를 많이 벗은 선배들이었다. 항상 교복이나 농구부 단체복을 입고 있던 시절과 달리 각자 코트나 야상을 제대로 입고 있어서, 키세는 단 몇 달 간의 시간이 엄청나게 길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또, 안에서부터 뜨거운 것이 치밀어올라, 키세는 얼른 머리를 숙이며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잘했어, 다들. 이래야 카이조 농구부지."

"그래, 놀기만 한 건 아니네."

 

모리야마가 싱글싱글 웃으며 칭찬하고, 카사마츠도 이어서 만족한 듯이 툭 말했다. 그런데 카사마츠의 그 말끝이 이상하게 떨린 듯한 기분이 들어 키세는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역시나, 눈가가 빨갛다. 울었슴까, 선배. 키세는 홀린 듯이 성큼성큼 걸어나가, 카사마츠의 등과 머리를 감싸 품 안에 가두듯이 끌어안았다.

 

"선배, 나 이겼슴다."

"...어, 잘했다."

 

우승을 한 덕분일까, 카사마츠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안은 키세에게 했을 만한 말들을 모두 접고 키세의 등을 토닥였다. 땀 냄새 나는 가슴팍에 꽉 짓눌리듯이 안겼는데도 버둥거리지 않았다. 대신, 키세는 품 안의 선배가 털 달린 야상째로 조금 떨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간신히 키세에게만 들릴 정도의 작은 숨소리로 울음을 누르고 있다는 것도.

 

"...가능하면 선배와 함께 이기고 싶었슴다."

 

그 말에 카사마츠는 키세의 등을 토닥이던 손을 멈추었다. 울음이 희미하게 섞인 숨소리가 얼핏 흐느끼는 소리처럼 들려왔다. 키세는 팔 안에서 들썩이는 야상의 어깨를 꽈악, 아플 정도로 힘주어 안았다. 야상의 후드 부분으로 자신의 눈물이 떨어졌다. 키세는 몇 초인지 몇 분인지 알 수도 없는 시간이 지나 카사마츠가 자신을 밀어낼 때까지 질식한 듯 울었다. 내일 아침 얼굴이 어떻게 되어 있을 지는 상상하지 않아도 두려울 만큼 뻔했다.

 

 

오늘은 그대의 날 오늘은 우리의 날ㅡ my glory d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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