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긴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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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립삼/키카사모리] 각설탕은 커피에 넣어 먹읍시다

motschi 2014. 9. 14. 01:57




미팅을 끝내고 레귤러들끼리 모처럼 패밀리 레스토랑에 왔는데, 또 농구 얘기로 불타올라 버렸다. 학교-편의점-집 말고 다른 데로 나온 게 얼마 만인지 너네들 알기나 하는 거냐? 아름다운 소녀가 운명처럼 나타났다가도 지나가 버릴 거란 말이야. 라고는 생각했지만 사실 나도 금방 포지션 논쟁에 열이 올랐다. 야 누가 뭐래도 슈팅가드가 제일 멋있지! 멀리서 슛 쏘면 3점 주거든? 덤비지 마, 키세. 코보리도 은근슬쩍 반박하지 마.

 

식사가 끝나고 후식으로 커피가 나왔을 때쯤엔 월간농구 과월호를 돌려 보고 있었다. 기적의 세대 인터뷰가 들어 있는 거. 작년 겨울 거니까 얘들이 고등학교를 어디로 갈지 뭐 그런 내용이었다. 하얀색과 하늘색의 유니폼을 입은 키세는 모델처럼 웃고 있어서 좀 재수없었지만 중학생이라 그런가 귀여운 맛이 있었다. 유니폼에 카이조가 아니라 테이코라고 쓰여 있는 건 낯설었는데, 카사마츠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키세의 사진에 계속 시선이 머물렀다. 키세의 인터뷰 내용을 하야카와가 소리내서 읽고 내가 놀리고 키세가 창피해하는 소란 속에서도. 뭐 집중하는 얼굴도 귀엽긴 하지만, 나는 일부러 카사마츠를 툭툭 쳐서 주의를 흩뜨렸다.

 

"카사마츠, 커피 다 식는다."

"어? 어어."

 

흠칫하며 고개를 들더니 순순히, 아직까지 손도 안 대고 있던 커피로 시선을 돌린다. 각설탕의 종이 포장을 벗기는데, 손가락을 움직이는 게 영 서툴다. 카사마츠는 지켜보는 내가 답답해지는 속도로 포장을 열고, 안에 싸여 있던 각설탕 두 개를 다 커피에 넣었다. 단 걸 좋아하는 입맛도 참 변함이 없다. 한 손은 스틱으로 커피를 저으면서 나머지 한 손으로는 코보리의 한 개 남은 각설탕을 집어들고, 자연스럽게 입에 넣는다.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취향이지만, 이럴 때의 카사마츠는 설탕을 노리고 외식에 따라오는 어린애 같은 모습이니까 존중하기로 한다. 시커먼 남자 녀석 주제에, 귀엽잖아.

 

안다. 좀 전에 카사마츠가 키세의 사진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것만큼 나도 이 녀석에게 집중하고 있다는 것 정도. 하지만 각설탕을 먹는 카사마츠는 그만큼 봐 둘 가치가 있다. 약간 바람을 넣은 양 뺨 안에서 혀로 각설탕을 이리저리 굴리면서 녹여 먹는데, 그게 또 얼마나, 선정적? 그렇게 말하긴 좀 뭣하지만, 어쨌든 보는 내 기분이 더 이상하단 말이지. 각설탕은 금방 녹아버리니까, 열심히 움직이던 혀는 곧 설탕 가루가 남은 입 안 여기저기를 핥는다. 직접 확인한 건 아니지만 뺨 여기저기가 볼록해졌다 들어갔다 하고, 자동으로 동그랗게 모은 입술이 오물오물 움직이니까. 카사마츠의 혀가 어디에 닿는지 그 궤적을 눈으로 따라 긋는 것만으로 내 입 안도 달고 부드러운 감촉이 가득 차는 듯했다. 설탕을 머금어서 달디단, 말랑한 혀가. 게다가 그렇게 남은 설탕을 다 핥아먹고 나면, 마지막으로 바깥에 남은 것까지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혀를 살짝 내밀어 입술을 훑는다. 시선이 다시 잡지로 향해 있으니까 분명히 무의식적인 거겠지. 아, 하지만 나는 얼핏 아래가 뜨거워질 듯한 느낌에 슬쩍 교복 상의 자락을 끌어내렸다.

 

"모리야마."

"...아, 그래그래. 여기."

"땡큐ㅡ"

 

내 쪽으로 손바닥을 내밀며 이름을 불러서 좀 놀랐지만, 카사마츠가 원하는 건 하나다. 나도 커피에 설탕을 한 개만 넣었으니까. 내 자리까지 팔이 안 닿은 건지 읽던 기사에 집중해서 그런 건지 당당하게 손만 뻗고 있다. 나는 그 손바닥에 내 몫의 각설탕을 올려 주고, 카사마츠가 그것을 입에 넣는 것을 또 지켜보았다. 봐, 또 굴리잖아. 좀 전에 혀로 핥은 입술이 반들거리는 게 참 위험하다. 뭐가 위험한지는 말 안 해. 나는 편하게 펼치고 있던 다리를 바짝 세워 오므렸다. 그리고 아쉽지만 카사마츠로부터 시선을 살짝 비끼자, 역시 카사마츠의 얼굴을 보고 있는 키세의 집중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설마했지만 키세도 나와 같은 것을 보고 있던 것 같다. 자기도 무의식 중에 혀로 입술을 핥고 있다는 건 모르겠지. 짜샤, 입맛 다시지 마.

 

"선배, 제 것도 드실래여? 전 설탕 안 넣슴다."

"오, 땡큐 키세."

"잠깐!"

 

인정한다. 인정한다니까? 카사마츠가 두 개째의 각설탕을 다 먹었을 때 나도 좀 아쉬웠던 건 인정한다. 하지만 키세가 아직 포장도 안 뜯은 새 각설탕을 건네줄 줄이야. 나는 테이블 위로 몸을 날려 막 포장을 열려는 카사마츠의 손목을 붙잡았다. 이거 먹으면 나야 좋고, 카사마츠도 좋고 키세도 좋긴 하겠지만, 새파란 후배 놈이 원하는 대로 해 줄 수는 없지. 나는 키세를 쏘아보며 카사마츠를 구슬렀다.

 

"유키짱, 설탕 계속 먹으면 이가 아야해요. 알지~"

"...죽는다 너."

 

험한 말과 함께 무섭게 노려보면서도, 카사마츠는 슬그머니 손에 든 것을 내려놓았다. 키세가 괜찮다면서 재차 권해도(나중에 기합 줄 거다) 고개를 젓고, 오히려 도로 키세 쪽으로 쭉 밀어 놓는다. 솔직하게 드러나는 태도에 나는 웃음이 새어나왔다. 이 상태의 카사마츠는 가만히 보고 있으면 자기도 모르게 손으로 뺨을 만져보면서 복잡한 표정을 짓곤 한다. 게다가 오늘은 또, 눈썹을 잔뜩 찡그린 채로 혀를 이리저리 굴리기 시작한다. 각설탕을 녹여먹을 때와는 또 다른 게, 자기 입 안 구석구석을 확인하는 듯한 움직임. 겉으로는 잘 나타나지 않지만, 저건 혹시 어디 아야한, 아니 아픈 데가 있는 건 아닌가 불안해졌을 때의 반응이다. 아마 설탕 두 개 넣은 저 커피는 안 마시겠지. 아 진짜, 다 큰 남자 녀석 주제에.

 

"저 화장실 좀 다녀오겠슴다!"

 

내가 카사마츠를 위해 물을 한 잔 주문하려고 손을 드는 순간,​ 키세가 벌떡 일어나서 튀어나갔다. 그 뒷모습이 유난히도 다급해 보여서 다들 피식 웃었지만, 나는 대충 짐작이 가서 마냥 웃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문제의 카사마츠는,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뺨에 손을 댄 채 눈만 끔벅였다. 

 

다음에 여기 올 땐, 키세 없이 오는 게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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